'봉천동나눔의집 소식'에 해당되는 글 194건

  1. 2019.05.03 언니, 오빠, 형, 누나들에게 듣는 '성' 교육
  2. 2019.05.03 추억을 나누는 그림책 읽기_박유리 간사(결연가정)
  3. 2019.05.03 주원 샘~ 졸업 축하해요~
  4. 2019.05.03 삶을 담는 그릇-김남석 신부
  5. 2019.03.13 나눔의집 실무자와의 대화_인천나눔의집 윤혜임 선생님(해와달지역아동센터)
  6. 2019.02.14 일본 메지로 대학 사회복지 전공 교수, 대학생 방문
  7. 2019.02.01 헌 집 주면 새 집이 나올까요?
  8. 2019.01.31 LG U+ 케이블 비정규직 지부 관악 동작지회 성금 전달 (2)
  9. 2019.01.29 봉천 나눔의집 실무자 공부모임
  10. 2019.01.28 임정민, 이지민 선생님 환영합니다~~~
  11. 2019.01.28 결연가정 어르신 프로젝트 '그림책 읽는 이웃'
  12. 2019.01.23 나눔의집 실무자와의 대화_김승연 센터장(맑은 숲 돌봄 협동조합)
  13. 2019.01.21 "돌아가셨는데 살아오셨어요! 예???"_박유리 간사
  14. 2019.01.21 봉천동나눔의집 주치의 조계성 원장님
  15. 2019.01.21 흐르는 강물은 얼지 않는다_서울관악지역자활센터 황호준
  16. 2019.01.21 관악진로직업체험센터 법인 변경
  17. 2019.01.21 매트 하나로 아이들이 차분해졌어요~
  18. 2019.01.21 "일년 수확 함께 나눌 수 있어 더욱 기뻐요~"
  19. 2019.01.21 행복한우리집 *연이가 대학생이 되었어요~
  20. 2019.01.21 "저도 1만원은 후원할 수 있어요."
  21. 2019.01.21 고양이가 식빵 굽는 달·봉천동나눔의집의 1월_김남석 신부
  22. 2018.12.14 참 따뜻한 졸업식_꿈샘 박영하
  23. 2018.10.31 '마음을 치유가 몸의 치유였어요'(가정결연이야기)
  24. 2018.10.31 한여름 밤의 졸업식
  25. 2018.10.31 뜨거운 여름...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겠지요(활동가단상)
  26. 2018.10.31 삶의 쉼표, 선물이 되는 인문학
  27. 2018.10.31 "숨을 안 쉰다고요? 당황하지 마세요. 이것만 하시면 됩니다."(이모저모)
  28. 2018.10.31 BTS는 만능 열쇠~(이모저모)
  29. 2018.10.31 자전거는 사랑을 싣고~(이모저모)
  30. 2018.10.31 나눔의집 미션의 다섯 가지 지표-김남석 토마 신부

초, 중등 학생 아이들이 크면 반드시 오게 되는 사춘기!호기심에 비해 아이들의 고민을 상담할 곳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물론 전문기관과 선생님을 통해 풀수 있는 고민이지만 어디 그게 쉬운가요? 아이들 입장에선 어렵고 쑥스러운, 또래가 아니면 가장 꺼내기 쉽지 않은 주제!비밀 아닌 비밀 고민!바로 ‘성’입니다. 

나눔의집은 이런 학생들의 고민(?)을 조금이라도 덜어주자는 취지에서 또래는 아니지만 전문 지식으로 무장한 젊고 멋진 언니 오빠, 형, 누나에게 함께 고민을 나눌 수 있도록 했습니다.

지난 2월 말 연세대의료청년봉사단 친구들이 저희 나눔의집 공부방 고학년을 대상으로 성교육을 했습니다. ‘성’ 하면 벌써부터 쑥스러운 아이들에게 조금 더 진지하고 편히 말할 수 있게 끔 남자, 여자 학생부로 나눠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부끄럼쟁이 아이들이 뭔 궁금함이 그리도 많은지, 2시간 교육이 후딱 지나가고 아이들의 얼굴 표정에선 교육이 너무 짧았다는 아쉬운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Posted by 봉천동나눔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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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글씨여? 내가 아는 게 아닌디? 아따 이것도 글씨네...허허...” 성경책 읽어보는 것이 소원인 이** 할머니는 “이 글씨는 뭐시당가 내가 아는 글씨가 아닌디... 나 한글 배우기도 벅차. 이것 못 배워”라고 하셔서 이것도 한글이라고 한참을 설득해야만 했습니다. 책 표지의 그림 글씨를 손으로 따라 써보는 어르신의 얼굴에 새로운 것을 접하는 어린아이의 얼굴 같은 미소가 번집니다.

연세대의료청년봉사단이 매달 2, 4주 토요일 봉천동 주변 어르신들의 말벗과 건강 체크, 한글 교실 수업을 위해 동네 어르신들을 방문합니다. 1년쯤 방문하다 보니 관계의 폭을 좁힐 이야깃거리가 좀 바닥났습니다. 그래서 올해 어르신들과 그림책을 만들어 볼까 하여 먼저 읽기 작업부터 들어갔습니다. 프로젝트 진행이라 말하기도 민망한 준비 단계지만 어르신들만의 자전적인 그림책을 만드는 것이 저희의 목표입니다.

나눔의집과 결연 관계에 있는 어르신 대부분이 그림책과 친숙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한글도 깨치지 못한 분들도 계시지요. 당연히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한권의 책으로 만든다는 것이 가능은 할까 하는 의문도 들지만 우선은 책 읽는 즐거움만이라도 어르신들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으헉~ 그림책값이 얼마나 비싼지  일단은 몇 권을 사서 돌아가며 보기로 했습니다.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누군가가 날 위해 책 읽어 준 기억이 없어”라며 아이 같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뭉클해지고 이것만으로도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방 한번 메어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어릴 적 기억은 팔순이 넘은 어르신들의 삶 속에서도 놓을 수 없는 갈망이었나 봅니다. 함께 책을 읽은 것만으로도 조금은 그 갈증을 채우는 듯했습니다. 어르신들에게 읽어주는 그림책은 추억이고 어르신의 옛 이야기를 더 깊이 들을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았습니다.


김 할머니는 텃밭이야기가 있는 그림책을 보시고 어릴 때 집에서 심었던 나무며, 꽃 이야기를 해 주기도 하셨습니다. 알사탕을 먹는 이야기가 나오는 그림책을 본 할머니도 아버지 주머니 속에서 나온 눈깔사탕의 달콤한 추억은 그림책 속 이야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더해 또 다른 옛날이야기로 변해 학생들에게 전해졌습니다. 


다음엔 또 다른 이야기를 읽어 줄 수 있냐는 어르신의 기대어린 질문에 어르신 만큼 할머니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새로운 이야기가 봉사자들에게도 흥미를 불러일으킵니다. 어르신들에게도 또 학생들에게도 그리고 저희 나눔의집에게도 새롭고 재미있는 경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봉천동나눔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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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우리 애가 저렇게 애들 보면서 눈에서 꿀 떨어지는 모습 처음 봐. 장가가면 애는 나처럼 잘 키울 것 같아


농담 한마디 던지시곤 공부방 아이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아이들을 챙기는 아들의 새로운 모습에 부모님의 웃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아들 눈에서 꿀 떨어진다고 하시지만 제가 보기엔 아들을 바라보는 주원 선생님 부모님의 눈에서 꿀 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지난 2월 공부방 봉사자 문주원 선생님의 졸업식에 중등부 친구들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졸업식에 오면 학사모는 다 한 번씩 써 보는 거야.”라며 주원 선생님은 아이들 한명 한명과 같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점심을 같이 먹자며 공부방 아이들을 초대해 주신 주원 선생님의 부모님은 “이것도 먹어봐 이게 더 맛있는 것 같다.”며 아이들을 살뜰히 챙겨주셨어요. 부모님을 보면서 주원 선생님의 평소 모습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알 수 있었죠.


문주원 선생님은 그저 정해진 요일만 오가는 봉사자가 아니라 시간이 허락하면 언제든 공부방을 찾아와 아이들과 놀아주는 공부방 친구였습니다. 매년 여름이면 4박 5일 일정으로 떠나는 들살이 때도 가장 편하게  부를 수 있는 봉사자가 바로 주원 선생님과 친구들이지요. 물론 저희가 부탁하기 전부터 아이들 들살이는 언제 가냐며 자신들의 일정을 먼저 비워뒀었지만요.

우리도 몰랐어. 애가 아이들 만나러 가는지... 한 번쯤 봉사하러 간다고 지나가는 말이라도 해 봄 직한데, 전혀 내색을 안 하더라고. 매일 친구들하고 놀러 가는 줄 알았지. 오늘에서야 애가 이렇게 아이들을 좋아하고 그렇게 자주 찾아간 줄 알았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을 실천하는 우리 주원 샘!오~~~ 우리 샘 멋지죠?


주원 선생님은 사실 딱 1년만 공부방에서 봉사하기로 했었어요. 그런데 어느덧 만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네요. 초등학생과 대학생으로 만났던 친구들이 이젠 일부는 중학생이 되고 또 일부는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직장인이 되어 학생 때처럼 자주 오진 못하겠지만 더 오래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봉사자 후원자로 그렇게 나눔의집 사람으로 만나고 싶습니다. 샘, 다시 한 번 졸업도 취업도 축하합니다. 

Posted by 봉천동나눔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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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온 어린 왕자를 우연히 만난 여우는 길들인다는 것은 ‘관계를 만든다’는 뜻이라고 설명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난 너에겐 수많은 다른 여우와 똑같은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나는 너에겐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거야.

 

우리는 봉천9동 비탈길 중턱 산 101번지에 자리 잡은 한 건물과 관계를 만들어 왔습니다. 사람과 건물, 서로가 서로를 길들여 온 지 근 삼십 년. 우리에게 나눔의집 공간은 이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건축물을 일컬어 ‘삶을 담는 그릇’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희로애락이 담긴 그릇. 나눔과 섬김, 희망과 좌절의 기억이 담긴 그릇. 그런데 올가을 그 건물이 헐립니다. 

재개발이라는 미명하에. 너무나 서운하지만 이제 어쩔 수 없이 다른 그릇에 우리 삶을 채워나가야 합니다. 서로를 길들이려면 또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지금껏 그래 왔듯 우리는 고마운 인연들로 인해 또 한고비 넘어갈 용기를 얻습니다. 적당한 새 그릇을 찾아 우리의 미래를 잘 담아갈 수 있도록 많은 기도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Posted by 봉천동나눔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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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봉천동나눔의집 외에도 서울교구에는 9개의 나눔의집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홉 나눔의집은 함께 기도하고 나눔의집의 공동의 가치를 함께 실현하기 위해 협의회를 구성하고 매월 한 차례 운영위원회를 가집니다. 그리고 작년 말부터 각 나눔의집을 돌며 운영위원회와 함께 오랜 실무자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2월은 협의회 전체 수련회 일정으로 운영위원회를 개최하지 못해 실무자와의 대화는 2달 만에 진행됐네요. 3월은 인천나눔의집을 방문해 해와달지역아동센터 윤혜임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야기 내내 웃음이 더 많은 분이셨어요. 아마 평상시에도 아이들과 그런 모습으로 만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니 절로 기분이 좋아집니다. 오갔던 내용을 아래와 같이 정리했습니다.(그대로 받아 적을 수 없어 중간 중간 내용은 편집자 임의로 추가된 부분도 있습니다. 이점 양해 바랍니다.)


질문지를 받고 여러 생각이 들었어요. 스물여덟 20대에 들어와서 아~ 벌써 만 8년이 지났구나 하는 생각이요. 이렇게 오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잡을 수 없는 시간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벌써 9년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예전 인천나눔의집은 지금보다 규모가 훨씬 컸었어요. 그래선지 입사 경쟁도 있었던 것 같고 그 경쟁력을 뚫고 이곳에 제가 들어왔습니다. ^^

“운동 잘하게 보이네요” 아마 제가 뽑혔던 건 다른 것보다 면접 보신 분들에게 힘 좀 쓸 것(?)으로 보였나 봐요. 1년간 정말 빡빡하게 교육을 받았어요. “아마 저희 기수만 그랬던 것 같은데... 안 그런가요?” 아무튼 그래서 8년이 지난 지금도 나눔의집 영성에 대해 술술 읊을 정도입니다.

그 정도 교육을 받았으면 뭔가 좀 나눔의집과의 긴밀도가 좀 다를 듯한데 당시엔 나눔의집이 버려 놓은 사업이 많다 보니 아동센터는 사실 좀 소외된 느낌도 있었고 저 역시 활동가라는 생각은 못 했던 것 같아요.

지역아동센터는 일의 특성상 나눔의집이 하는 모든 회의에 참여하기 힘들었어요. 시간대가 우선 맞지 않았기 때문에 회의 결과를 전달받는 입장에 있어서 조금 수동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나눔의집의 다른 참여자도 많아서 나 아니어도 “그냥 내 일만 하면 되는구나...”하는 생각도 사실 있었어요.

글쎄요. 활동가와 직원?

활동가는 뭔가 단순지 자신의 직무만을 해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좀 다른 형태의 뭔가를 하는 사람처럼 생각이 됐어요. 철학이 좀 다르다고 할까? 아무튼 지역과의 연대도 폭넓은 인간관계에 일과 함께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닐까 싶어요. 거기에 열정페이도 좀 포함되지 않았나 하고... 현재의 일에만 중심을 둔 저 같은 사람은 활동가는 아닌 것 같았어요.  

나눔의집 사업이 축소되고 저희도 회의 구조에 참여하게 되다 보니 “아 나도 나눔의집 사람이구나! 무언가 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더 하게 된 것 같아요. 규모가 강제로 축소되면서 불합리함도 있었고 떠난 이들에 대한 허전함과 남아 있을 수 다른 방법은 없었나? 하는 그런 회한? 그리고 작아져서 일도 더 많아진 것이 사실이지만 제 개인적으론 작아진 예전보다 지금이 더 좋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소속감도 더 생겼고 현재 신부님과도 실무자간에도 대화가 많아졌어요. 숫기가 없어서 앞에선 하고 싶은 말을 잘하지 못하고 고민을 이야기해도 사실 해결되진 못하지만 어찌 되었건 뭔가 들어준다는 것 자체가 든든한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나눔의집이 사람과의 관계가 우선되는 그런 직장이었기에 아마 저도 오래 일할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아이들도, 만나는 사람도 좋아요. 일이 힘들어도 계속 일할 수 있는 것엔 그런 이유가 있어서이지 않을까 합니다.

협의회나 혹은 교구 법인에 대한 바람이요?

글쎄요. 나눔의집이야 어디나 다 똑같을 것 같으니 뭘 바랄 입장도 아닌 것 같고. 사실 법인이나 교구에 뭘 기대하지 않아요. 뭔가 해주거나 들어준 것도 없는 것 같고 지금까지도 스스로 해결해야 했던 것이 대부분이라 바람에 대해선 생각도 못해 봤어요.

아무튼 형편은 어려워졌지만 현재가 좋습니다. 두서없이 이야기 했지만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Posted by 봉천동나눔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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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 메지로 대학 교수님과 학생분들이 봉천동나눔의집 옥상에서 주변을 돌아보며 마을의 형성과 현재의 상황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봉천동나눔의집에는 도움을 요청하는 주민들과 이분들을 돕는 봉사자
, 그리고 오며 가며 이야기꽃을 피우기 위해 방문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복지시설 탐방 목적으로 방문하는 곳도 많습니다
. 특히 해외에서 빈민운동을 하는 단체나 단체의 실무자 그리고 사회복지를 전공하는 학생들과 관계자들이 많이 찾습니다.


사실 나눔의집은 마을 공동체 안에서 장소를 제공하고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돕는 교회의 선교 역할이 더 크기 하지만 복지시설로 더 많이 인식하고 있는듯합니다
.


지난
212일에도 메지로 대학 사회복지학과 교수와 대학생 3, 4학년 15명이 나눔의집을 방문했습니다. 강남대학교와 교류 관계에 있어 일본에서 생활하셨던 강남대학 전호성 교수(사회복지학부), 그리고 통역을 맡은 김영미 선생님(재단법인 경기도교육연구원)이 이분들을 인솔해 나눔의 집을 찾아오셨습니다.


전호성 교수님과 김영미 선생님은 부부시고 성공회주교좌교회 교인이기도 합니다
. 특히 김영미 선생님은 19929월 봉천동나눔의집이 화재로 다시 재건축될 때 함께 봉천동나눔의집을 짓는데 손을 보탰던 봉사자 중 한 명입니다.


바로 요기 아래 사진 속 우측 첫 번째 안경을 쓰신 분이 김영미 선생님이십니다
.

26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실무자인 저로서는 매번 벽에 걸려있던 사진 때문인지 25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인 선생님 모습 때문인지는 몰라도 금방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방문한 메지로 대학 분들은 나눔의집의 역사와 현재 활동 모습에 대해 들으셨고 나눔의집 옥상에 올라 주변 상황과 주민들과 나눔의집이 어떤 형태로 만나는지 소상히 듣고 또 꼼꼼히 메모해 가셨습니다.

잘 통하지 않는 영어로 서로 간에 정확한 의사 전달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학생 한 분은 그때그때의 주변 상황에 따라 프로그램이 아닌 공동체 일원으로 주민과 만나고 이들을 돕는 나눔의집 활동이 인상에 깊었다고 하셔서 나눔의집에 대해 잘 설명이 됐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무엇보다 전날 열심히 볶아 놓은 커피 열 봉지를 방문자 분들이 사주셔서 더 큰 기쁨이었지만 말이죠 ^^;;

Posted by 봉천동나눔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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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바닷가가 고향인 제가 어릴 적 가장 많이 부르던 동요였어요. 모래사장에서 할 수 있는 흔한 놀이 중 하나였기 때문일 겁니다. 그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어느 날 생각해 보니 이 동요가 굉장히 이상해 보였습니다.


두꺼비가 마법을 부리지 않고서야 어떻게 헌 집을 새집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신앙인의 눈으로 보자면 돌을 떡으로 만드는 사탄의 권능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 일 겁니다. 


이런 상황은 재개발을 앞둔 우리 나눔의집에 더 여상스럽지 않게 다가옵니다.


“조합에서 여기 싸인 만하면 헌 집을 새집으로 바꾸어 준다고 해서 사인을 했지~” 감정 평가 금액이 나오고 거의 눈물 쏟을 것 같은 얼굴로 집 매매를 고민하는 주변 어르신의 말입니다. 


감정 평가가 나오고 추가 부담금에 대해 잘 몰랐던 분들은 평가와 추가 부담금 산정에 대한 실체를 아시고서야 ‘두꺼비집 집 교환’이 사실과는 다르다는 걸 알게 되셨지요.


미디어에 노출된 소식은 온통 투기와 한몫 잡는다는 내용만 나오지 쪽 대본보다 적은 분량의 불이익에 대한 뉴스는 소시민들이 알아차릴 수 없는 내용입니다. 물론 조합과 개발사가 거짓 마법사인 인줄 모르고 욕심을 부린 사람들의 잘못도 있겠지만...글쎄요. 당한 이들의 잘못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땅을 가진 이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세입자분들의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쥐꼬리만 한 이주 지원비도 무려 10년 전부터 살고 있었음을 증명해야 하고 임대주택 공급도 11년 전인 2008년 2월 28일 이전 거주자임을 증명해야 합니다.


집값이 오르거나 생계를 위해 자주 주거지를 옮겨야 하는 이들로서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지난 1월 23일 주택재개발 정비사업과 관련한 주민설명회가 있었습니다. 관할 공무원과 갈등 조정 전문가 감정평가원 등으로 구성된 협의체가 강제퇴거 없는 자진 이주를 유도하기 위한 세입자를 대상으로 한 설명회였습니다.


설명회 개최 후 3회 이상 운영. 불참 시 1회 개최 인정(단 조합원은 제외). 이외 기타 등등의 운영원칙과 협의체 운영방법 등이 3쪽에 걸쳐 설명되어 있지만 오신 분들에겐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듯합니다.


대부분 내가 이주 시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 그리고 이주 시점에서 전세금이나 보증금은 주인이 돌려줄지에 대한 불안이 팽배했습니다.


참석자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은 아마도 ‘된다’, ‘안 된다’, 집 주인이 보증금을 빼주지 않으면 어떻게 해주겠다는 개별적이고 누군가의 책임 있는 답변인 듯한데... 소위 전문가분들은 ‘원칙이 이렇습니다.’, ‘집주인이 안 줄 수 있나요. 법이 그런데.. 그건 집주인과의 문제입니다.’라는 말뿐입니다. 계속 쳇바퀴 같은 이야기가 오가니 한숨만 나왔습니다.


형식을 맞춘 설명회는 그렇게 끝이 났지만... 주민분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을지는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ㅠㅠ

Posted by 봉천동나눔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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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을 앞두고 LG U+ 케이블 비정규직 지부 관악 동작지회(이하 관동지회)에서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후원금을 전달해 주셨습니다.

 

나눔의집과는 희망연대노조의 파업 활동을 계기로 알게 되었지만, 나눔의집과 동작지회가 직접적인 인연을 맺어온 것은 지난 20164월부터입니다.

 

조합원이 모일 장소조차 없어 영업시간을 피해 운영되는 호프집을 빌려 회의 공간으로 사용하던 관동지회는 20164월부터 매월 한 차례 일과가 끝난 늦은 저녁 나눔의집에 모여 조합원 회의를 열었습니다.

 

고양이 눈 같은 업무용 오토바이크 랜턴을 켜고 한 분 두 분 모인 관동지회 조합원분들은 나눔의집에 비치된 커피믹스 한 봉지씩을 종이컵에 따 마시며 노동 개선을 위한 토론과 활동 방향을 논의하셨지요.

 

아마 20177월부터였던 것 같아요. 매달 교회 공간이 비는지 확인을 해오던 전화가 오지 않게 되었던 것은... 궁금하기도 했지만 지역에서 들여오는 소식이 그리 나쁜 건 아니어서 다른 사정이 있나 라고만 생각했었습니다.

 

20191월의 마지막 날 관동 지회 조준묵 지회장님이 나눔의집에 방문하셔서 전체 케이블 노동자들의 조합원 가입이 높아져서 구로디지털단지 쪽에 따로 회의 공간을 마련할 수 있는 여력이 생겼다며 몇 달간 소식을 전하지 못했지만 오늘 감사함을 전하기 위해 방문하게 됐다며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라며 후원금도 함께 전달해 주셨습니다.

 

조 지회장님은 나눔의집이 어려울 때 공간을 내어주고 회의할 수 있도록 해주셔서 감사했고 그 고마움이 어려운 이웃들에게도 설을 앞두고 나눔의집을 통해 조금이라도 전달되었으면 한다.”며 일과 때문에 오래 머무를 수 없다며 다음에 찾아오겠다며 짧은 만남을 가졌습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잊지 않고 찾아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후원해주신 정성을 어려운 이웃울 위해 잘 사용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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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종덕

    아낌없이 사랑을 나누시는
    토마스신부님과 나눔의집 직원님에게
    언제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9.02.01 11:37 [ ADDR : EDIT/ DEL : REPLY ]
  2. 늘 나눔의집을 위해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김종덕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건강하십시오.
    항상 같은 모습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나눔의집이 되도록 힘쓰겠습니다.

    2019.02.01 11:4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목적은 공부하는 모임인데...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놀기 위한 모임이 아닌가 의심해 보기도 합니다. ^^


봉천동나눔의집에는 활동가들의 자발적 모임이 있습니다. 공부 모임. 저는 사실 독서 모임으로 알고 있었습니다만 모임의 한 간사는 공부 모임이라고 우기기에 그렇게 알기로 했습니다.


지역활동가 공부 모임은 2015년 5월부터 매월 한차례 모입니다. 지역활동가라 이름 붙였지만 봉천동나눔의집 산하의 실무자들입니다.


책만 읽은 것이 아니라 1박 2일 캠핑가기, 보드게임, 영화 보기와 칵테일 만들기 등 다양한 방법으로 모입니다. 사실 다양한 활동이라 부르고 음주를 위한 꺼리를 만드는 것 같기도 합니다만 그동안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B급철학’, ‘동물농장’,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클래식 강연’,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국가란 무엇인가’, ‘시 감상 및 발표’ 등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고 함께 토론하며 스스로의 내공을 기르기도 했지요.


생각을 나누고 같은 비전을 꿈꾸며 현재 할 수 있는 미션을 고민하는 꾸준한 모임을 가져왔기에 2017년부터 지역 내 저소득층 주민들의 교육지원을 위해 현재까지 해오는 나눔야학도 그 성과가 아닐까 합니다.


지역은 다르나 같은 꿈을 꾸는 노원나눔의집 맑은 숲 돌봄 협동조합의 김승연 센터장이 밥을 먹고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는 생활 공동체였던 옛 나눔의집의 모습이 행정이 우선되고 실무자의 능력을 우선해서 보는 현재의 모습과 비교해 매우 그립다고 합니다.


봉천동나눔의집도 오랜 실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전의 모습과 많이 달라진 듯합니다.


그러나 김승연 센터장이 그리워하는 그 생활 공동체의 모습이 봉천동나눔의집엔 여전히 살아 숨 쉬는 것 같아요. 전구가 나갔다고, TV가 왜 안 나오며 작은 컨테이너 사무실을 찾는 어르신들과 수다가 떨고 싶을 때 찾아오는 주민과 추억을 간직한 옛 활동가와 주민들. 


능력도 있지만 서로를 보듬고 북돋아 주는 공동체. 현재와 옛 정서가 함께 살아있는 봉천 공동체의 모습은 바로 공부 모임과 같은 활동가들의 꾸준한 만남과 활동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박봉의 활동가들 다수가 모이다 보니 도서구매과 문화 체험도 사실 저렴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녁식사와 간식도 사실 잘해야 자장면 한 그릇이요. 치킨에 맥주가 뒤풀이의 전부지만 - (사진)이번 달 공부 모임은 간식이 제법 풍성하군요 ^^;; - 모임에서 나눠지는 이야기꽃은 항상 풍성합니다.


공부모임이 앞으로도 꾸준히 공부하고 고민하는 자리를 통해 활동가들도 살찌우고 지역 공동체가 살찌울 수 있는 모임을 이어가길 기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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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시작과 함께 봉천동나눔의집 소속 기관인 관악지역자활센터에서 임정민, 이지민 두 분 선생님이 함께 일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123일에는 나눔의집을 방문해 나눔의집의 역사와 소속 기관들의 활동, 앞으로의 기대 등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특히 이지민 선생님은 관악지역 활동가들이 1년 한 번 12일로 모이는 관악지역 활동가 워크숍에도 참석해 20대 모둠의 조장으로 활약했고 봉천동나눔의집 활동가 모임인 독서모임에도 참석하는 등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자활 회계 행정 업무를 담당하게 된 임정민도 조만간 나눔의집 여러 분야에서 활발히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기대합니다. ^^ 두 분이 나눔의집에 잘 적응하고 활동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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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얼굴이 누가 봐도 제일 잘 그려진 것 같아요~ 샘이 그린 그림은 어디 있어요?”

“... 묻지 마세요...”


상대의 얼굴에 OHP 필름을 얼굴에 대고 얼굴 윤곽을 따라 그리는 것이 쉬운 듯 또 생각만큼 잘 그려지진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도구의 힘을 빌려서 인진 몰라도 모두 “나 못 그리겠다.”는 소린 한마디 없이 모두 그림 그리는 것이 즐거워 보입니다.


지난 1월 12일 봉천동나눔의집(이하 나눔의집)과 관악건강돌봄네트워크 그리고 연세대의료청년동아리(이하 의청)가 함께 ‘그림책 읽는 이웃’을 주제로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나눔의집 주변 어르신들과 의청 학생들이 그림책을 매개로 어르신 자신의 삶을 그림으로 풀어내 보자는 취지입니다.

지난 일 년 동안 의청은 담당 학생들이 한 달에 두 번 결연 가정 어르신 댁을 방문해 말동무가 되고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혹 잘못 드시는 약이 없는지 실내 거동 중에 위험한 것들이 없는지 보고 개선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어르신들과 친해지고 또 많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지만 친해진 만큼 사실 또 일 년이 지나니 딱히 나눌 이야기도 마땅치 않아진 것이 사실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어르신의 삶을 공유하지 못하는 20대 청년으로서 그저 현재의 신변잡기 외엔 어르신과 대화할 내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르신의 불편함을 찾아 덜어드리고 건강을 점검하는 것도 의미 있고 필요한 일이지만 좀 더 깊이 접근하고 뭔가 의미 있는 진전을 기대했던 건 나눔의집만 아니라 의청의 욕구이기도 합니다.


마침 나눔의집과 의청의 매개인 일신연세의원 조계성 원장님이 자신이 들었던 프로젝트가 나눔의집 어르신들과 함께하기 딱 좋은 사업인 듯하다며 ‘그림책 읽는 이웃’ 프로젝트를 소개해 주셨고 지난 12일 프로젝트 진행 담당자인 한명희 대표를 모시고 맛빼기 강연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이 작업은 사실 충남 부여 송정마을에서 이미 성과를 보인 프로젝트입니다. 그림책 문화예술 단체인 ‘그림책미술관시민모임’이 2015년부터 송정마을 주민들과 함께 ‘그림책 읽는 마을 찻집’ 조성 사업하고 어르신들과 함께 그림책을 읽고, 그림을 그렸고 이 둘을 엮어 23권의 그림책을 만들었습니다.

한명희 대표(위 사진)는 “20대 젊은 학생들과 프로젝트를 함께 공유하는 것은 저로서도 처음 있는 일이라 잔뜩 고민을 짊어지고 가지만 분명히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아요”라며 “그림책에 담긴 이야기는 평범하고 소박하지만, 정직하고 또, 긍정적인 삶의 자세가 담겨 있고 저는 그림책이 노인과 아이들을 이어주고 마을이 가진 기억을 통해 도시와 소통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며 봉천동나눔의집 어르신들과 학생들이 함께 해나갈 작업도 굉장히 기대된다고 말합니다.


사실 저희도 고민이 많습니다. 책 하나 만들기가 사실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저희 어르신 다수가 한글을 깨우치지 못한 데다 색연필 한번 잡아 본 적 없는 분도 많아서 그림책이야 함께 학생들과 읽는다 치더라도 이후 어르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또 그림으로까지 엮어가기가 쉬운 일만은 아닐 것이라 예상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ㅠㅠ 읽어드릴 책부터 작업이 끝난 후 책을 만드는 것까지 재정을 마련하는 것도 사무국으로선 큰 걱정입니다. 쉽지 않지만 좋은 사업일 것 같기에... 고민은 깊어갑니다.


하지만 ^^ 뭐 열정의 바퀴가 굴러가면 나머지 일은 눈덩이 불어나듯 되어가지 않을까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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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봉천동나눔의집 외에도 서울교구에는 9개의 나눔의집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홉 나눔의집은 함께 기도하고 나눔의집의 공동의 가치를 함께 실현하기 위해 협의회를 구성하고 매월 한 차례 운영위원회를 가집니다.


그리고 작년 말부터 각 나눔의집을 돌며 운영위원회와 함께 오랜 실무자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1월에는 노원나눔의집을 방문해 맑은 숲 돌봄 협동조합의 김승연 센터장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오갔던 내용을 아래와 같이 정리했습니다.


센터장님에게 나눔의집은 어떤 곳입니까?


노원나눔의집은 나의 우물 안입니다.

밥 먹여주고 이웃과 함께하는 터전이기 때문이죠. 한 곳에서 일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데 나눔의집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에 감사드립니다. 


나눔의집에 대한 기대는?


기대
? 현재로선 기대는 없습니다. 과거 20대에는 있었죠. 20대인 25~26년 전엔 나눔의집이 굴러가는 방식이 대단히 주먹구구식 있었고 특별한 절차도 없어도 어떻게든 굴러갔어요. 같이 밥을 먹고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는 생활 공동체였습니다.

일과 삶의 구분이 없던 때였고 첫 애정의 장소였고 아직 젊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겁도 없고 어떤 사람이 와도 함께 기거할 수 있는 그런 곳이었어요. 주정꾼이 와도 기꺼이 받아주고 기거할 곳이 없는 아이들도 와서 몇 달 쉬다 갈 수 있는 곳이었어요. 저 역시도 마찬가지로 얼마간 쉬어 갈 수 있는 곳. 누구든 기꺼이 받아주는 쉼이 가능한 곳이었어요. 세월이 흘러 모든 행정이 예전과는 달라졌어요. 지출 결의가 있어야 하고 규칙이 있고 업무분장도 있어서 자기일 너의 일이 생겼습니다.

업무가 나눠지고 행정이 우선되다 보니 실무자에 대에서도 인격의 영역에서 유능함의 영역으로 바뀌었어요. 따뜻한 사람보다 유능한 사람이 더 필요한 곳이 아닌가 생각되더군요. 사람에 대한 평가가 색이 변했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래서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잘못됐다 생각하진 않아요. 저와 맞지 않기 때문에 오는 그저 그리움입니다. 누구나 받아주고 수다 떨고 언제나 가면 맞아주고 밥도 주는 곳.

약속을 잡아야 만날 수 있는 곳이 되고 넉넉한 수용의 공간이었던 곳이 지금은 그렇지 않게 되어 옛 기억이 기준이 된 저에게 지금은 조금 불편한 곳이 되었습니다. 그 기준이 자꾸 실망감으로 다가오는데...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실무자에게 3개월 수습 기간이 있다는 것에요. 저에겐 큰 상처였습니다.


어떻게 개선하면 좋을까요?

개선보다는... 돌이켜보면 나의 기준이 바뀌지 못한 건 아닌가 싶습니다. 나눔의집에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 놓은 건 아닌가 싶어요. 나눔의집은 이런 저런 곳이야라고 말하기보다 나눔의집에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려 합니다.

지금은 많은 사람이 나눔의집에 오고 또 그 사람들은 저마다의 모양을 가지잖아요. 네모, 세모, 동그라미 전 그대로의 모습을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 형태가 네모 세모 동그라미 그중 하나일지라도 내 기준으로 맞추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형태는 잘 안 바뀌는 것 같아요. 제 형태를 크게 하면 다른 모양일지라도 다른 모양의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 때문에 누군가 선언한 곳으로 가야 하는 나눔의집이 아니라 다양한 이들의 길을 존중하고 그 길로 갈 있도록 가꾸어 주는 그런 곳이 나눔의집이였으면 하고 그게 더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회의를 자주 하고 과거를 돌아보고 또 이렇게 하자고 비전을 선포하는 것. 저는 피곤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나눔의집도 비전을 이야기하지만 30년간 계속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요. 그저 자주 만나고 악수하고 또 차 한잔하면서 수다 떠는 것, 그 속에서 무언가를 공유하고 무언가를 해나갈 동력 방향을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끝으로

내 생각만큼 믿을 수 없는 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무슨 거창한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 부끄럽더라고요. 그래서 일터에선 사소한 말들과 논의가 기쁘고 바로 할 수 있는 일을 논의하는 것이 좋습니다. “내일 할 일은 의논하지 말자. 지금 할 일을 하자그게 제가 일하는 돌봄 협동조합에서의 일 방식입니다. 그 때문에 모든 일이 공유되고 또 누가 급한 사정으로 결원이 되더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여러 푸념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밥벌이잖아요. 쉰 나이에 밥 먹고 살 수 있는 직장을 준 나눔의집에 감사함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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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나눔의집에 웃지 못할 해프닝이 일어났습니다.


1년 전 돌아가신 것으로 알고 있었던 이** 할아버지의 핸드폰 번호로 한밤중에 전화가 걸려왔기 때문이지요. 저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전화를 받아야 했지만, 순간 당황스러워 몇 번이나 신호음이 지나가기를 기다렸습니다.


보이스피싱인가? 결국 몇 번의 망설임 끝에 통화 버튼을 눌렀습니다. 벌써 1년 전에 돌아가신 것으로 알고 있었던 어르신의 목소리가 생생히 전화기를 통해 들려왔습니다. 


"박 선생~~ 나 이제 돌아왔어. 먹거리 다시 받으러 갈까 하는데 괜찮겠지?" 무슨 공포 영화도 아니고 돌아가신 분이 전화로 찾아오겠다고 하니 어찌 당황스럽고 무섭지 않을 수 있겠어요.


일단은 '그러겠다', '오시면 말씀 나누시자'라고 하곤 종료 버튼을 눌렀습니다. 다리 힘이 쭉 빠지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오신다는 분이 약속한 날짜에도 오지 않고 2주 동안 오신다는 전화만 계속하시는 거예요. 정말 2주간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고 사무실에선 모두 온갖 상상의 나래를 다 폈습니다. ㅠㅠ 


2017년 여름 매주 두 차례 나눔의집에 반찬을 받으러 오시던 할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오시지 않게 되었어요. 궁금함에 전화도 하고 집을 찾아가기도 했지만 만나 뵐 수도 없었어요. 걱정스러움에 어떻게 연락이 닿지 않을까 싶어 쪽지를 남겨 두었는데 며칠 뒤 할아버지의 조카라는 분이 나눔의집을 찾아오셔서 할아버지의 소식을 전해 주셨지요. 갑자기 몸이 많이 안 좋아지셔서 지방에 계신 할아버지 누님댁에 요양가게 됐다며 더는 반찬을 주시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어요.


소외 노인분들의 건강이야 하루가 다르다 보니 갑작스러운 건강 이상 소식도 사실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지만, 연세가 그리 많지도 않고 몸을 움직이지 못한 만큼 건강이 나빠 보이시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연락조차 안 될 만큼 건강이 악화 되셨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소식이었지요. 


어찌 되었건 조카분에게 할아버지에 대한 새로운 소식이 있으면 알려 달라 하곤 조카분의 연락처를 받아 두었습니다. 그리고 가끔 생각이 날 때마다. 조카분에게 할아버지는 어떠신지 물어보곤 했지요.


그러다 지난 2017년 가을 조카분에게 연락드렸더니 할아버지가 이미 돌아가셨으니 이제 연락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거예요. 돌아가셨을 때 말씀해 주시지 그러셨냐고 반문했지만, 경황이 없어 못 알려드렸다며 전화를 끊어 버리셨어요. 마지막을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 좀 더 자세히 물어 볼 걸 하는 마음에 한동안 기분이 우울했습니다.


그런데 18년 가을, 할아버지가 연락을 주신 거에요. 전화가 오고 2주가 지난 어느 날 나눔의집을 찾아오셨어요. 다행히 건강도 생각처럼 나빠 보이지 않으셨어요. 조카분이 어떤 마음으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말씀하셨는지 알 길이 없고 할아버지께서도 "오해가 있었다"고만 말씀하실 뿐 그 일에 대해서는 더는 말 하지 말라 하시니 차마 더 물어볼 수 없었지만, 다시 뵐 수 있게 된 것 만으로도 반갑고 기뻤습니다. 


이** 할아버지처럼 아예 돌아가셨다 말하는 친지분은 지금껏 없었지만 사실 나눔의집을 오시는 어르신들 중 상당수는 어느 날 갑자기 가족분들에 의해 어느 요양원으로 모셔지고 연락이 두절 되는 경우가 의외로 종종 있습니다. 가족들은 나눔의집이 연락하고 찾아가는걸 꺼리는 것 같습니다. 연락처도 요양병원 주소도 알려주지 않으시고 다만 잘 계신다고만 말씀하시죠. 그러다 몇몇 분들은 돌아가시면 연락이라도 주셔서 장례식장에서나 겨우 영정으로 마지막 인사를 나누곤 합니다. 저희가 어떤 불이익을 주려는 것도 아니고 단지 어르신의 말동무가 되어 드리려는 것뿐이었는데... 왜 연락처를 알려주시지 않을까 속상하면서도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새삼 어르신들뿐 아니라 가족들에 관한 세심한 관심과 배려도 나눔의집이 쏟아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무튼 혼자 지내시는 이** 할아버지는 몸도 마음도 힘드시지만 늘 웃으면서 특유의 말투로 "박 선생~~"하고 부르시며 나눔의집에 찾아오세요. 한동안 듣지 못했던 할아버지의 "박 선생~~" 소리를 듣게 되어 고맙고 반갑습니다. 할아버지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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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성 원장님(일신연세의원)은 봉천동나눔의집의 주치의라고 불림니다. 무슨 협약 관계로 맺어진 사이는 아니지만, 나눔의집과는 주치의 관계란 말이 이상하지 않습니다.


“나눔의집을 알게 되고 함께 이런저런 일을 하게 된 건 한 3년 정도 전인 것 같아요. 처음엔 관악지역에서 준비하고 있는 의료협동조합 일로 김남석 토마 신부님을 추천받고 명상교실을 하게 되면서부터였어요. 만나서 그룹홈 행복한우리집의 아이들 이야기를 듣고 감동을 받았었어요. 시설이 아닌 가정형 돌봄이라는 것이 자식을 키우는 저에게 돕고 싶다는 생각을 절로 들게 했거든요. 마을을 중심으로 한 나눔의집의 돌봄도 주치의라는 제 목표와도 참 가깝게 느껴졌어요.”


건강을 위해 언제든 찾아가 만날 수 있는 의사. 자신뿐만 아니라 건강한 삶을 위해 가족을 비롯한 내 주변의 건강도 함께 돌볼 수 있도록 관계 형성, 간호사, 사회복지사, 영양사, 성직자 등 지역자원이 연계될 수 있도록 다리가 되는 건강 허브 역할을 하는 사람이 주치의라고 조계성 원장은 말하곤 합니다.


“신부님하고 나눔의집 사무국 고현정 간사님하고 같이 호스피스 교육을 받을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나눔의집이 하는 다양한 사업들에 대해 알게 됐고 접촉면도 넓어진 것 같아요. 저는 함께 건강한 삶을 살아가고 또 마무리까지 같이하는 그런 1차 의료기관 호스피스를 운영해 보는 것이 꿈이에요. 나눔의집이 하는 다양한 일들을 보며 많이 배워요. 언젠가 이룰 제 꿈의 파트너로 마을에서 함께 일하는 나눔의집의 모습 재미있지 않을까요?”


조 원장님은 지난 2017년 초에 자신이 활동했던 학교 활동 동아리인 연세대 의료청년봉사단과 나눔의 집 결연가정 사업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셨어요. 계획된 그림은 아닌 것 같지만 ^^;; 후배들과 함께하는 나눔의집 결연가정 사업이 미래 모습의 단편은 아닐까 저희도 상상해 봅니다.


“마침 후배들이 자원봉사 활동할 곳을 찾아서 나눔의집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기술만이 아니라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며 사람을 배우는 것이 의료의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인간적 의료를 배울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라 생각했고 한 일 년 지난 지금 성과도 좋고 저도 많이 배웠고 좋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건강한 공동체는 육신의 치유와 건강 유지 삶의 질적 향상이 함께 일어나는 곳이어야 한다고 조 원장님은 말합니다. 그리고 사업적 마음으로 가려는 조직을 내적으로 채워줄 영성도 함께 가야 한다며 나눔의집이 그런 역할을 계속해서 해주길 바란다고 전하세요. 항상 봉사 현장에서 앞장서시는 분에게 이런 주문을 받는 것이 부담이지만 저희도 계속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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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드라마 「대장금」이란 드라마에 열광했어요. 고난과 역경을 딛고 수라간 최고상궁, 조선 최초의 여성 어의가 되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어린 저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었지요. 뒷배는커녕 부모님도 안 계신 흙수저가 최고상궁이 되고 궁에서 쫓겨나는 고난 후에도 어려움을 딛고 다시 궁에 돌아가 최고의 자리에 오르던 그녀의 스토리는 슈퍼 히어로이자 누구 못지않은 핫한 아이돌이었습니다. 나도 열심히 해야 한다는 다짐과 함께 드라마 주제가인 ‘오나라’를 열창하곤 했었습니다.


그 후 16년 뒤, 저는 서울관악지역자활센터의 통장사례관리자가 되었습니다. 저소득 주민의 자립 발판이 될 수 있도록 목돈을 받을 수 있도록 적금을 들게 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간단한 재무상담도 함께합니다. 이 일도 이제 10개월째 하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잘하고 있나?’ 요즘 들어 가장 많이 하는 생각입니다. 삶의 발판이 되는 통장이다 보니 일에 대한 무게감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주민이 가입한 통장이 희망키움 통장이 아니라 절망 키움 통장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계속 저를 사로잡습니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이 일을 하는 게 주민을 위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이불을 뒤척인 것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일이 잦아질수록 제 어릴 적 히어로인 장금이를 떠올립니다. ‘이럴 때 장금이는 어떻게 했을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의 저처럼 자신을 책망하며 멈춰서 있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흐르는 강물은 얼지 않는다고 합니다. 수라간에서 쫓겨난 장금이가 모든 걸 포기한 채 앞으로 나아가는 걸 멈춰버렸다면 그녀는 대장금이 되지 못했을 터입니다. 이를 반대로 말해 보자면 힘들다고 지금 포기해 버리면 더는 성장치 못하고 그대로 도태될 수 있다는 말이 되겠지요. 저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함께 하는 주민분들에게 간곡히 말하고 싶습니다. “멈추지 말고 함께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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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관악지역청소년자활관의 후신인 관악진로직업체험센터가 2018년 12월 31일부로 봉천동나눔의집 산하 단체에서 꿈지락 비영리 네트워크로 법인을 변경합니다. 이에 따라 청소년층을 중심으로 나눔의집 활동 가치를 함께 해왔던 박태진 센터장을 비롯한 직원 모두가 나눔의집에서 지역 활동 단체로 독립하게 됩니다. 


산하 단체의 독립은 원칙적으로 축하해야 할 일이지만 법인인 성공회가 종교 재단이라는 제한 속에서 구청의 행정 요건을 만족할 수 없어 독립되는 만큼 아쉬움이 큽니다. 


그러나 비록 나눔의집이란 직접적인 울타리 밖에 자리하더라도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꿈꾸는 나눔의집의 가치와 영성을 다른 이름으로 함께 공유하고 지역에서 활발히 실현해 나갈 것으로 기대합니다. 새롭게 출발하는 관악진로직업체험센터의 발전을 위해 함께 기도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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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우리 공부방이 아닌 것 같아요~ 바닥이 차갑지도 않고 단단한데도 푹신해요~" 몇몇 녀석들은 뛰어도 보고 갑자기 우당탕 쓰러져 보기도 하고 누워서 엉덩이를 들썩여 보기도 합니다.


"야~~ 이거 오래 써야 한다고~ 너 연필로 매트 찌르면 알아서 해~" 고학년 언니 형, 오빠, 누나들은 혹여나 꼬맹이들이 새로 들여온 매트에 사고라도 칠까 부쩍 잔소리가 심해졌습니다. 아이들은 발걸음마저 조심스러워졌고 저희 교사들에게조차 뭐 흘리지 말라고 야단을 칩니다. ^^;;


목돈을 들여 무언가 실내 전체를 꾸미는 것이 공부방으로선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실 구석구석이 이 모양 저 모양 마치 모자이크를 한 것처럼 조금 어수선했는데 바뀐 바닥 덕분에 아이들의 성격마저 차분해 진듯합니다. 후원하고 시공까지 해주신 파크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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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 좀 봐 내 다리보다 굵다니까?", "그 다리랑 어떻게 비교해 그게 다리야 작대기지 ㅋㅋㅋ" 


농 섞인 말을 주고받으며 지난 11월 16일 도시영농사업단 선생님들이 노동의 고단함도 잊은 채 1년 동안 키운 배추와 무를 수확하고 김치를 담가 필요한 이웃에게 나누는 행사를 했습니다.


이상기온에 손에 익지 않은 품목을 심고 가꾸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는데 생각보다 풍성하게 수확했습니다. 


스스로 맺은 결실의 기쁨을 직접 김장까지 하여 나누니 즐거움이 두 배가 되었습니다. 거기에 일손을 돕기 위해 플렉시블 사업단까지 동참해 힘이 필요한 일은 젊은 플렉시블 사업단에서 맡고 경험이 필요한 작업은 영농 사업단 분들이 분담하다 보니 작업도 훨씬 쉽게 끝나 모두가 화합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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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연아 올해 수능 국어가 그렇게 어려웠다는데 야 ~대단하다~ "

" ^^;; 에이 선생님 저 수시로 합격한 거에요. 올해 수능 어려웠던 거랑 상관없잖아요."


행복한우리집에 경사가 났습니다. 맏이 *연이가 2019학년 입시에서 수시로 **대 치기공과에 합격했습니다. 고등학생 타이틀은 아직 달고 있지만 웬~지~ 이제 대학생이 된다고 생각하니 더 어른스럽게만 보입니다.


법이 정한 규정상, 그룹홈에 있는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그룹홈에서 독립을 해야 합니다. 그 때문에 맏이 *연이에겐 지난 1년이 누구보다 생각이 많았을 것입니다. 독립 이후 생활은 어떻게 꾸려나가야 할지, 대학과 학과는 어디에 어떻게 맞춰 정해야 할지, 독립 이후 함께 따라 나가겠다는 두 살 아래 동생은 어찌 건사해야할지 본인이 아니면 아무도 책임과 삶의 무게를 공감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 잘 못하겠어요..." 수줍게 웃기만 할 뿐 자신의 의견을 내기에 주저함이 많았던 *연이는 대학에 원서를 넣자마자 일자리를 구하고 퇴소 이후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수험생이라는 타이틀을 벗어 던지는 해방감에 맘껏 자유롭고 응석 부릴 19살 *연이는 그렇게 '철'이 들어 버렸습니다. 


대견하지만 또 그래서 안쓰럽기만 합니다. 독립을 위해 앞으로 6개월간 행복한우리집에서 사회적응을 준비합니다.  *연이와 *희 자매가 잘 적응하고 훌륭한 사회인이 될 수 있도록 모두 기도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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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선생님은 봉천동나눔의집과 가장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온 주민이지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나눔의집과 인연을 맺었고 그룹홈 행복한우리집 1호 이용자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사무실 주변 임대아파트에서 생활하고 계시고 일이 없을 때는 자주 방문합니다. 

"어? 나눔의집 후원은 만원도 가능해요?", "그럼요 더 작게도 후원하지요. 샘이 간혹 도와주시는 먹거리 나눔도 후원인걸요.", "그럼 저도 후원할게요. 후원하려면 더 많이 해야 하는 줄 알았죠. 만원은 저도 할 수 있어요!"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 그런데 새끼손가락이 좀 더 아프더라”라는 우리 어머님의 말씀이 갑자기 머리를 스치네요. 후원자 어느 한 분 고맙지 않을까요. '일 만원 후원자' 장 선생님 본인에게도 쉽지 않을 돈일텐데... 솔직히 마음이 더 갑니다. 장 선생님 고맙고 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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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1월이 찾아왔고 좋건 싫건 2019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를 주고받으면서도, 재개발을 코앞에 둔 불안한 마음과 이런저런 염려들을 감추지 못하는 봉천동 식구와 이웃들을 보니 이 겨울이 유독 춥게만 느껴집니다. 


흔히 인디언이라고 부르는, 엄연히 말하자면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달력을 만들 때 그들을 둘러싼 풍경의 변화나 마음의 움직임을 헤아려 그달의 명칭을 정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족마다 1월의 이름을 달리 갖게 되었는데 몇 가지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 머무는 달 / 아리카라 族

추워서 견딜 수 없는 달 / 수우 族

눈이 천막 안으로 휘몰아치는 달 / 오마하 族

나뭇가지가 눈송이에 뚝뚝 부러지는 달 / 쥬니 族

얼음 얼어 반짝이는 달 / 테와 푸에블록 族


우리도 외부의 자극과 내면의 반응을 깊이 응시하고 나서 저마다의 달력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저는 나눔의집에 드나드는 길고양이를 쳐다보다가 문득 1월을 “고양이가 식빵 굽는 달”로 이름 붙여봤습니다. 나눔의집 대문 앞 양지바른 곳에서 식빵처럼 웅크려 앉아 체온을 아끼는 그들을 보며 “인생 참 고되고 춥지만 한 평 햇볕에 힘입어 질긴 생명을 이어가는구나!” 감탄해 마지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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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천동나눔의집 소식2018. 12. 14. 10:19


오직 한 사람을 위해

차가운 겨울 저녁

교실가득 하객들이 모였다

 

자식들 다 키우는 동안

참고 누르고 기다려 온

배움의 꿈 이루려고

 

자식들과 같은 또래의

착한 선생들이 수업하는

나눔야학에 다닌지 두 해

 

거의 한 날도 빼먹지 않고

언제나 같은 자리에 앉아

보고 듣고 쓰고 되뇌이며

 

배움과 깨침의 기쁨 누리고

떨리는 가슴으로 응시한

고졸검정고시에 어렵게 합격

 

그러나

나이 60이 넘은 그이는

검정고시가 꿈은 아니었단다

 

집 밖으로 나오고 싶었고

세상과 소통하고 싶어서

발디딘 곳이 이곳 야학이란다

 

남들은 시험 합격하면

다들 발 길을 끊는 데

그이는 계속 나오고있다

 

배움의 기쁨을 알고

가르치는 보람을 알려준

오직 한 사람을 위해 마련한

 

그리운 동요 정겹게

흥겨운 캐롤 신나게

간절한 꿈노래 함께 부른

 

이 눈물겨윤 졸업식 덕분에

찬 바람부는 겨울저녁

우리는 서로가 참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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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천동나눔의집 소식2018. 10. 31. 14:29


본인의 이름보다는 승준이 할머니로 더 친숙한 최돈행 어르신을 나눔의집에서 뵙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습니다. 승준이는 나눔의집 지역아동센터인 공부방을 오랫동안 다녔던 학생이었지만 말이죠.


할머니는 사람에 대한 정이 아주 그립습니다. 가끔 얼굴을 뵙게 되는 날이면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쏟아 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시지요.


그런 할머니가 요즘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 생겼습니다. 매달 둘째와 네 번째 토요일 할머니 댁을 방문하는 연세대 의료 청년동아리 친구들 때문이지요. 올해 3월부터 할머니집을 찾아오는 의청 친구들은 7개월간 약속된 날에 빠짐없이 방문해 할머니의 말동무로 또 건강 지킴이 역할을 해오고 있습니다. 7개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이 기간에 할머니에게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처음 할머니를 뵈었을 땐 잘 움직여지지 않는 몸과 다리 때문에 화장실도 하루 두 번 겨우 가셨고 음식이나 물도 잘 드시질 않으셨어요. 일어나실 때는 키가 다른 의자 2~3개를 팔꿈치로 옮겨가며 짚어서 일어나야 했고 온몸의 무게를 팔로 지탱해야 하니 팔도 아프고 다시 돌아와 앉는 것도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기에 화장실을 가거나 음식을 먹으러 가는 것이 즐거운 일상이 아닌 고단한 노동과 진배없으셨지요. 그렇다고 누운 상태로 움직이는 것 역시 그리 쉽진 않으셨어요. 한 자세로 계속 누워 있자니 피부병이 생기고.... 내 몸이 내 몸처럼 움직여지지 않으니 자존감도 많이 낮아지셔서 마음속에 좋지 않은 생각도 많이 하셨다고 해요. "빨리 죽어야 하는데..."라는 희망 없는 소리와 웃음 없는 얼굴이 할머니의 평소 표정이셨어요. 


"같은 할머니이신가?"라고 입에서 절로 감탄이 나올 만큼, 근래 뵈었던 할머니의 얼굴은 미소로 가득했어요. 의청 친구들과 만나며 이야기도 많이 나누시고 운동도 많이 하셨다고 해요. 물론 바라시던 산책도 자주 학생들과 나가기도 했고요.


할머니 댁엔 숫자가 아주 큰 달력이 있습니다. 그 달력 2번째 4번째 주 토요일엔 동그라미가 크게 그려져 있습니다. 바로 의청 친구들이 오는 날입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할머니의 숙제 스케치북이 있습니다. 친구들이 알려드린 운동을 하고 기록하는 숙제 노트랍니다. 그 안에는 매일 숙제를 하신 할머니의 흔적들로 가득합니다. 


할머니 댁에 오시는 요양보호사 선생님께서도 할머니의 기운이 많이 달라지셨고, 표정도 너무 밝아지셨다고 감사의 말씀을 늘 전해 주십니다. 


반찬을 배달하는 매주 금요일 할머니를 뵙는 날엔 꼭 의청에서 오는 봉사자 친구들 이야기를 합니다. 너무 좋고 고맙다는 말씀을 꼭 전해 주라고 말씀하세요. 할머니 댁에 갔다 온 의청 봉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예전에는 비관의 말씀들을 많이 하셨는데 지금은 말씀하시는것도 긍정적인 면으로 많이 바뀌셨다고 합니다. 


통증 때문에 몸을 일으켜 세우는 두려움을 이젠 많이 이겨내시고 더 자주 집에서 활동하신다고 해요. 몸이 더 건강해지신 것도 감사할 일이지만 긍정적으로 변한 마음도 실무자들을 행복하게 합니다. 

할머니 건강하세요~~ 


- 박유리 간사(가정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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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천동나눔의집 소식2018. 10. 31. 14:26


나눔야학 개교 이래 처음 졸업생 한 분이 생겨서 조촐하게 자리를 마련했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4절까지 다 함께 부르는 거로 졸업식 축가를 대신했는 데 "설렘과 두려움으로 불안한 행복이지만" 이 부분에서 목이 메었다.


이어 주인공 졸업생을 위해 동료 학생들과 교사들 몇이 돌아가며 축하 말을 나눴다. 올봄에 초등과정을 마치고 아이처럼 좋아하시던 자신의 어머니가 떠오른다며 잠시 울먹이는 영어 선생님. 이번 검정고시 잘 못 봤지만, 야학에 더 나올 수 있게 되어 너무너무 행복하다는 학생분. 아낌없이 나눠주는 선생님들 열심히 배우는 학생분들 만나니 힘 나고 힐링 된다는 도우미샘. 나눔야학 덕분에 소원도 풀고 남편이 자신을 자랑스러워했다며 얼굴 가득 미소 품고 좋아하는 그리고 앞으로 사회복지사 시험에 도전하여 자기처럼 어려운 이웃과 나누고 언젠가 야학의 후배님들께 도움이 되고 싶다는 착하디 착한 우리 졸업생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음으로 전하는 이야기에 우리는 어느새 하나가 되었다.


야학에선 모두가 선생님이다. 배움에 누구보다도 앞장선 학생들이 최고의 선생님이고 그런 학생들이 보고 싶어 퇴근 후 먼 길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 나누는 이들도 선생님이다.


한 사람을 축하하기 위해 모두 한마음이 된 한여름 밤의 졸업식 이런 감동과 기쁨을 나누는 아름다운 사람들과  오래도록 함께이고 싶다.                                                                


- 나눔야학 교사 박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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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천동나눔의집 소식2018. 10. 31. 14:16

시간이 흘러 2018년 여름은 우리 모두에게 어떻게 기억될까?


나는 수능을 앞둔 첫째, 학교 홍보 모델인 고등학교 1학년 둘째, 사춘기에 막 접어든 초등학생 5학년의 두 숙녀들, 이들과 함께  밤과 낮을 교대로 지새우는 교사 2명과 함께 행복한우리집을 살아가고 있다. 


살과 살이 닿는 것이 세상의 가장 끔찍한 일인양 이번 여름은  뜨거웠다. 그러나 무더위는 고난이기보다 또 다른 선물이었다. 거실에 설치된 에어컨을 앞에 두고 아이들 모두가 각자의 방에서 탈출해 함께 자고 또 함께 식사하고 책을 베개 삼아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꽃을 피우며 게임과 공깃돌을 던지고 올여름을 보냈다.


함께 모이는 것은 변화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게 만드는 초대다. 한 살이 역사책만큼이나 더 먼 시간처럼 여겨지는 고등학생과 초등학생 간의 간격도 이 시간만큼은 좁혀졌다. 언니들은 마음을 활짝 열었고 동생들도 내리 사랑이란 걸 경험하고 말로 전하지 못하는 언니들의 마음을 알아차렸다.


온풍기로 변해버린 달그락거리는 선풍기 아래 에어컨이 없는 사무실은 찜질방으로 변했고 시간마다 샤워하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 없는 여름이었지만 거실에서 자는 아이들을 보며 ‘늘 오늘만 같아라’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선생님도 함께 거실에서 자요”라고 아이들이 말해줄 땐 고맙고 나도 모르는 행복의 미소가 흘렀다.

 

그러나 며칠 태풍으로 비가 억수같이 내린 그 날 저녁 이후 여름은 물러가고 찬바람이 싸하고 불더니 아이들도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한여름 밤의 꿈이었듯이 아이들의 유대감은 태풍 앞의 성냥불처럼 예전의 냉랭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휑한 거실... 더위를 견뎌내야 했지만 왁자지껄한 웃음으로 가득 채워졌던 기억.  모두 2018년의 모습이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고 행복한우리집을 나간 후에도 2018년 여름날을 기억할 땐 에어컨 앞에 하나였던 그때를 기억으로 남겼으면 좋겠다. 나 역시 고마움을 간직하며 행복한 미소를 흘렸던 그 날을 더 가슴속에 간직하리라... 



- 대한성공회 행복한우리집 보육교사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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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천동나눔의집 소식2018. 10. 31. 14:12


지난 6월 22일 자활 참여주민 26명이 나눔인문학 프로그램을 시작했어요. 주 1회 총 20회기로 진행되는 제법 긴 호흡의 인문학 프로그램입니다. ‘삶의 쉼표, 선물’을 주제로 즐겁고 유익한 시간으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인문학이 우리 삶에 작은 위로, 쉼, 선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함께하는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살아가는 작은 힘으로 남았으면 좋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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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천동나눔의집 소식2018. 10. 31. 14:10


"침착하게 그리고 앞에 있는 사람들을 정확하게 지적하면서 도움을 요청하세요. 빨간 옷 입은 여자분은 119에 신고해 주시고 거기 등산모자 쓰신 아저씨는 제세동기 좀 가져다주세요. 이렇게요. 침착하게 하시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지난 9월 29일 연세대 의료 청년 동아리와 서울관악자활센터가 공동으로  지역 주민을 위한 무료 건강강좌를 진행했습니다.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예비 부모와 영유아 부모님, 노인분들과 청소년을 위한 강좌를 마련했습니다. 격주로 어르신들을 위한 말벗이 되고 있는 학생들이지만 학교를 졸업하면 의료인으로 활동할 청년들이이기에 할 수 있는 만큼 전공을 살려 지역 봉사에 힘쓰자는 취지에서 마련했지요.


자신이 맡은 강좌를 위해 학업 중에도 자료를 정리하고 빡시게 스스로를 점검하는 시간도 가졌답니다. 물론 전문 의료인의 검증도 받았고요. 이를 위해 관악의료사회적협동조합의 조계성 원장(일신연세가정의학과)과 정유미 간사님이 도움을 주셨지요. 


좁은 장소, 접근이 어려운 장소인지라 생각처럼  참여자가 많지는 않았지만, 약과 수술이 아닌 정과 열정으로 치유되는 가슴 벅찬 시간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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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천동나눔의집 소식2018. 10. 31. 14:05

"선생님 더워요~ 그런데 저걸 타자고요?~~~"


첫날 점심은 끝내줬다. 한우~~ ㅋㅋ 고기는 사랑이다. 그런데 한우라니 상상했던 것 이상의 맛이어서 첫 일정부터 만족이다. 그 기분에 더해 두 갈래 물이 만나는 나루라는 순우리말 뜻처럼 숙소인 '아우라지'팬션은 고기사랑과 만나 내 기분을 더 좋게했다.


그런데 레일바이크라니... 이 더운 날씨에 ㅠㅠ 선생님 너무해요~. 투덜거림도 잠시 "에이 이 한 몸 희생하지"라는 큰마음을 품고 다리 살이라도 빼자는 각오로 뻐근하게 패들을 밟았다. 아~~ 상쾌하다. 생각처럼 덥진 않았다. 그리고 레일바이크를 타며 함께 불렀던 BTS(방탄소년단)의 노래는 선생님들과 우리를 하나로 묶는 만능 열쇠였다. 선생님이 더 좋아하고 크게 불러서 솔직히 창피했지만 ^^;; 그래도  공통된 관심사로 좋은 곳에서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아 참 여행 중 들렸던 화암 동굴도 좋은 추억이었다. 마법의 길 같다고 해야 할까? 기분이 나쁘거나 우울한 사람도 이 동굴에 들어가면 웃으며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매년 가는 가족 여행이지만 올해보다 재밌었던 여행도 없었던 듯하다. 아마 내년에는 또 올해가 가장 재밌는 여행이었다고 말하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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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천동나눔의집 소식2018. 10. 31. 13:59


서울관악지역자활센터 자전거되살림사업단 참여주민들이 지난 5월부터 6월까지 폐자전거를 수거해 지역 내 주민분들에게 나눠 드리는 행사를 했습니다. 


거리 난간 사이에 흉물스럽게 방치된 녹슬고 펑크 난 볼품없는 자전거를 다시 닦고 조이고 기름칠해서 마치 새 자전거처럼 만들어 냈습니다. 


새 자전거는 아니지만 필요한 분들에게 나눠드리는 자전거되살림사업단 여러분의 얼굴에도 웃음이 가득했고 마침 자전거가 필요했던 지역 주민분들에게도 기분 좋은 나눔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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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천동나눔의집 소식2018. 10. 31. 13:56


얼마 전 아홉 개 나눔의집 교육담당자들이 모여 “우리가 각 지역에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른 말로 “공동체의 미션(mission)”이라 할 수 있는 이 부분이 명확해야 교육의 방향이 바로 서기 때문입니다.

각 나눔의집의 상황과 맥락이 달라서 구체적인 활동엔 차이가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함께 지향해야 할 몇 가지 지표를 추려볼 수는 있겠다 싶어서 수개월에 걸친 토론 끝에 아래 결과를 얻었습니다. 물론 수정도 필요하고 보완도 해야겠지만 일단 문장으로 정리하는 것에 의미를 두었습니다.

여기서 “가난”은 비단 경제적 차원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정치적 빈곤 상태를 두루 아우르고 있습니다. 참고로 아래 내용은 세계성공회가 공유하는 다섯 가지 선교적 지표(The Five Marks of Mission)를 나눔의집에 걸맞은 내용과 표현으로 변형한 것임을 알립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선포합니다.”


“가난한 이웃과 더불어 함께 배우고 성장합니다.”


“사랑의 섬김으로 이웃의 필요에 응답합니다.”


“불의한 사회구조를 변혁시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창조의 온전성을 보존하며, 지구 생명의 회복과 유지에 헌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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