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연가정으로 저희와 묶여 있는 박 모 할머니(78)가 어제 반찬을 가지러 오시는 길에 뒤로 넘어져서 등 쪽을 다쳤어요.

 

급히 정형외과로 모시고 가서 진찰하고 엑스레이도 찍었는데. 경과를 더 지켜 봐야 한다고 합니다.

 

연세가 있으시다 보니 뼈가 약하고 이전에도 두 번이나 넘어지셔서 입원한 병력이 있으신지라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엑스레이 촬영 결과 척추 11번과 12번 뼈는 그대로 납작하게 주저앉아버린 상태고 1번 뼈도 변형이 있는 상태입니다. 특히 1번 뼈가 이번에 넘어져 다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된다고 합니다. 이틀 정도 경과를 봐야 한다는데...

 

진통이 계속되면 MRI를 찍고 이번 충격으로 척추압박골절이 된 것으로 판명이 나면 허리에 깁스하고 한 달 정도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고 하네요.

 

그런데... 박 할머니는 혼자 사시는 형편이 어려운 분이지요. 수급자가 아닙니다. 아들이 두 명 있다고 하지만 한 명은 전혀 연락조차 되지 않고 다른 한 명은 연락처가 있지만 찾아온 것도 오래전이고 연락처도 신뢰가 없어 연결될지도 의문이지요. 사실상 돌볼 사람이 없는 경우입니다.

 

급히 병원에 모시고 가고 진료와 물리치료 정도는 저희 예산에서 지급한다지만 이후 검사와 입원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리만 복잡합니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분들과 함께 있다 보면 이런 현실적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하도록 합니다.

 

할머니는 계속 나 요양원에 보내줘라고 말씀하시지만 수급자가 아니어서 이 또한 저희가 들어드릴 수가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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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주민건강협회 희망의 친구들'에서 어제(41) 봉천동나눔의집 어르신들과 아이들을 위해 화장품 다섯 상자를 전해 주셨습니다.

 

김미선 상임이사님과 구정희, 김정우, 이애란, 최은희 팀장님 이주연 이슬기 간사님께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저희에게 연락해주시고 신경 써주신 이슬기 간사님에게 감사드립니다.

 

물품은 결연 가정 어르신과 그룹홈 행복한우리집, 공부방 드림한지역아동센터에 고르게 전달되었습니다.

 

어르신과 아이들의 개인 정보 때문에 직접 전달하는 모습은 홈페이지에 올리지 못했습니다. 전달 장면은 따로 희망의 친구들에 보내어 내부 자료로만 사용하도록 하였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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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얼굴에 이게 다 뭐래요. 어머니?”

 

넘어졌어. 별거 아니여~”

 

한글 교실에 나오시는 박 할머니(78) 오른쪽 얼굴 3분의 1이 반창고로 덮여 있었어요. 손을 보니 팔도 온전하지 않고 단순히 넘어진 건 아닌듯해 어머니 이건 그냥 넘어진 게 아닌 것 같은데요?”하고 물으니 잠시 숨을 가다듬으시더니 그제야 사실을 이야기하셨지요.

 

나 사는 곳에 정신이 좀 헷가닥 한 아가 하나 있어. 가가 내가 그냥 쳐다봤는데 잡자기 와서 밀더라고 다른 손에 가위도 들고... 쪼매 무섭고 당황스러웠는데 다행히 옆에 있는 다른 아줌마가 그걸 보고 와서 가위를 빼앗고 해서 다른 사고는 안 났지~”

 

그래서 어쩌셨어요. 신고는 하셨어요?”하고 물으니 신고는 무신... 형사가 오긴 했는데 걍 돌아가라 했어.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었더니 뼈에는 문제없다 해서 그 집 할망구한테 병원비만 달라 했지라고 하신다.

 

아니 할머니 그래도 나중에 더 아플지도 모르는데...”

 

지금도 뼈가 좀 아프고 욱신거리긴 해. 그래도 에이~ 그 집 할망구도 나처럼 폐지 줍고 그렇게 살어... 나 사는 게 그 집보다 더 나사... 없는 집끼리 그람 안 돼지. 가도 뭐 제 정신이라 그런가... 가 때문에 속 썩지...”

 

사실 현장에 있다 보면 아는 놈이 더 무섭다는 말을 피부로 느낄 때가 자주 있어요. 하지만 역시 아픈 사람 속은 아픈 사람만이 안다는 역시 자주 접하게 됩니다. 박 할머니 처럼.

 

제가 더 감사한 하루였어요. 할머니 아니 어머니 아프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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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했던 벽의 그림이 바래지는 만큼 세월이 흘렀습니다.

 

봉천동나눔의집의 사무실은 1998522일(위의 사진) 한누리공부방에서부터 시작되었어요.

 

비록 허가된 건물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은 스스로 컨테이너 벽을 색칠하고 테이프커팅 등 오픈 행사도 했답니다. 주변 어른들도 하나 둘 모여 축하해 주었고 축제 아닌 축제로 시작됐지요.

 

IMF가 터지고 갈 곳 없는 이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기 전까지 이곳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해요. 해체된 가족들의 보금자리로 사용된 이곳이 살림터가 생기고 다시금 공간이 확보되었지만, 공부방이 청소년자활시설로 편입되면서 청소년은 청소년자활센터로 초등, 중등학교 아이들은 드림한누리공부방으로 분리되어 이후 쭉 컨테이너 공간은 사무실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컨테이너 벽면엔 아이들의 흔적이 흐리지만,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무지개 우산을 든 아이와 초록 잎이 무성한 나무, 커다란 두 마리 개구리 그림이 흐리지만 기억의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 저거 봐 저 그림 아직도 남아있어. 저거 내가 그린거야.”

 

두 여성의 목소리가 사무실 창 너머에서 들릴 때 20년 전 이 자리에서 아이들의 공부방 선생님이었던 사무실 고현정 간사는 그때의 그 감정을 담아 이들을 부릅니다.

 

길언아~ 정아야~”

 

돌아서는 서른을 넘긴 두 여성은 이제 더는 아이라 부를 수 없는 나이가 되었고 한 명은 세 자녀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찾아오는 많은 분이 녹이 슨 컨테이너를 다시 색칠하는 건 어떠냐고 하시지만, 기억의 뿌리가 사라질까 쉽사리 지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사무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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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빨리. 빨리 나와 봐요~~ 어서요~~”

 

신발도 벗지 않고 흥분 상태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대흥(가명)이는 괴성의 대흥으로 불리는 만큼 아파트 단지 내에서도 유명한 녀석입니다. 평소도 유달리 큰 소리를 내지만 오늘만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적이 없었지요.

 

교사들도 놀라서 무슨 일인가 후다닥 뛰어나갔습니다.

 

선생님 저 오늘 100점 맞았어요~~. 이거보세요

요란한 웃음소리와 함께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꺼내 보인 시험지에는 커다란 동그라미 하나가 떡하니 그려져 있었지요.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인 대흥이는 작년 7월 처음 우리 공부방(드림한지역아동센터)에 들어온 친구입니다. 어머니와 할머니가 모두 한국말을 전혀 모르시는 중국분이시라 대흥이도 한국어보다는 중국어에 더 익숙했기 때문에 한글 받아쓰기는 물론이고 다른 시험도 이해가 어려워 대단히 어려워했지요.

 

작년 7월부터 겨울방학 초까지 공부방을 오가며 열심히 친구들과 형들을 쫒아 한국어 실력을 키우더니 그만 올해 1월 중국에 있는 외가에 갔다 오더니 한국어 실력을 모두 초기화 시켜버려 선생님들을 난감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말씀보다 공부방 따거~~”들의 말씀에 더 순종하던 이 녀석이 이번에 다른 과목도 아니고 한글 받아쓰기에서 백점을 받은 것은 스스로에게도 그렇지만 공부방 선생님들에게도 놀라운 일입니다.

 

대흥이는 오늘 받아쓰기 100점 기념으로 구구단 6단까지 외우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원래는 5단까지가 숙제인데 치솟는 자신감과 기분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간 덕분이지요.

 

사랑받고 싶은 아이... 사랑이 아이를 키워가는 것 같습니다.


* 사진은 대흥(가명)이와 드림한누리공부방 신정은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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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응원합니다

    2016.06.04 18:35 [ ADDR : EDIT/ DEL : REPLY ]
  2. 감사합니다. 화이팅~

    2016.06.08 17:3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여기선 울면 어떻게 해요...”

 

전해 들은 한마디가 아직도 마음을 먹먹하게 합니다.

 

지난달 말 행복한우리집에 들어온 막내가 차 안에서 선생님에게 처음으로 조심스레 한 말이라고 합니다.

 

차마 글과 말로 아이에 대해 자세히 말할 수 없지만, 아이는 상상할 수 없는 모진 삶을 10년 동안 견뎌 왔더군요. 다행스럽게도 얼마 전 약을 처방받기 위해 갔던 병원의 의사 선생님은 아이가 겪었던 일에 비하면 굉장히 잘 견뎠고 생각보다 밝다고 말해주셨어요.

 

태어나 수용 시설이 대부분이었고 가족과의 짧은 시간도 끔찍한 기억뿐인 아이입니다. 시설에서는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자랄 수 없는 아이지요. 행복한우리집(이하 우리집)은 아이를 받아들이기로 했고 아이가 우리집에서 생활한 지 이제 한 달이 되었습니다.

 

아직은 적응이 더 필요하지만, 4명의 언니들과 함께 생활하며 안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눈이 크고 참 예쁜 아이입니다.

 

복희(가명) 말고도 4명의 여자아이들이 봉천동 나눔의집 곁 우리집에서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복희 처럼 폭력에 노출되진 않았지만 가족이 해체된 아픔속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즘 보육시설들이 많이 좋아졌다고 합니다. 언론의 자극적인 기사 때문에 몹쓸 곳으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이제 웬만한 시설에선 시설장 혹은 선생님들의 폭력은 좀처럼 찾아보긴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설 안에서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위계가 있습니다. 아이들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지요. 그 안에서 몇몇 아이들은 적응하지 못합니다. 이런 아이들에겐 일반 가정집처럼 작고 따뜻한 공간이 필요하지요.

 

봉천동나눔의집에서는 대안적 보육공동체 행복한 우리집을 이십 년 전부터 운영해 오고 있고,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때 까지 돌보며 건강하게 사회로 나가도록 돕고 있습니다.

 

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정부보조금만으로는 버텨내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재작년 우리 공동체도 심각하게 행복한우리집의 존폐를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과연 우리 재정으로 더 운영할 수 있을까?”하고요. 그러나 아이들이 나가면 도대체 어디로 나지?”라는 물음 앞에 신앙공동체로서 도저히 그만 둘 수 없었습니다. 이곳을 떠난 아이들의 삶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아시는 분은 아시지만, 저희 나눔의집 신앙공동체는 겨우 30명이 안 되는 교인이 십시일반 모아 공동체를 꾸려나가고 있습니다. , 신앙공동체 일원은 아니지만 나눔의집의 정신을 공유하는 공동체 일원 23명이 헌신적으로 돕고 지인들로부터 후원 서약을 적극적으로 받아 함께 나누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규모가 정해져 있다 보니 운영자금을 줄이고 줄여도 우리집 아이들과 공부방, 30여 결연가정을 돕기 위한 자금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커피 사업도 그런 취지에서 시작한 것이지요. 하지만 여전히 모자라서 이번에 또 다른 사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공동체의 일원인 전 힐다 교우님이 식물 세밀화를 그려 주셨고 이것을 액자와 엽서로 만들어 팔고 있습니다.

 

그림을 고해상도로 스캔해 고급용지에 찍어서 액자와 엽서를 만들었습니다. 액자 하나에 만원 엽서는 다섯 장 한 세트로 만원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식물 세밀화 또는 보태니컬 아트라 불리는 이 그림은 섬세한 붓 터치와 색감의 조화를 통해 식물이 갖는 고유의 특징을 구체적이고 아름답게 묘사하는 예술 장르로 집이나 사무실 어디에도 잘 어울립니다.

 

액자를 하나 사시고 엽서도 한 세트 구입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액자의 그림이 익숙해지면 엽서의 다른 그림으로 바꾸시면 됩니다.

 

그림은 제비꽃, 지노랑상사화, 붓꽃과 보리수, 자목련 다섯 가지입니다.

 

여러분의 도움이 절실한 도움이 필요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사랑을 나누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액자 및 엽서 신청은 봉천동나눔의집 사무국으로 02-871-1596 신청해 주십시오.

 

후원: 국민 04681-04-057470 봉천동나눔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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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봉천동나눔의집에서는 커피를 볶아 판매하고 있습니다. 수익금으로 그룹홈과 공부방 아이들을 지원하기 위해서죠.

 

사무국에 실무자가 첫 출근하는 날에는 커피 볶는 시다(보조) 역할이 업무 인수인계 과정입니다. ^^;;

 

가스통에 불을 붙이고 로스팅기를 올려놓고 적당히 예열된 기계 안에 커피를 넣고 탁 탁 다다닥 팝핑 소리에 귀 기울이다 적당히 커피가 볶이면 서둘러 쿨러(환풍기를 떼다 가는 망과 굵은 망을 겹쳐 화분 받침대에 올려놓은 김남석 토마 신부님이 직접 만든)에 커피를 식히는 작업을 합니다.

 

커피를 볶으며 배송될 곳과 어떻게 주민들과 관계를 넓히고 운영을 잘 할 수 있을지를 이야기 하지요. 쉼의 시간이면서 업무가 자연스럽게 이뤄집니다.

 

봉천동나눔의집이 볶는 콜롬비아 후일라 커피는 향과 산미, 바디감, 단맛도 적당한 커피로 컵 오브 엑셀런트(Cup of Excellence-COE: COE 개최국에서 특정 연동에 생산된 최고의 커피) 대회에서 80점 이상을(솔직히 고백하자면 간당간당 받습니다. ㅋㅋ) 획득한 스페셜티 품종입니다.

 

커피 볶는 일과 그림을 그려 액자를 파는 사업처럼 수익 사업을 하기는 하지만 사무국의 주된 일은 아니라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커피를 볶습니다. 로스팅 기계는 작고 배달할 수 있는 거리도 한정되어 있기에 많은 분께 팔 수 없는 커피지요.

 

많이 팔면 좋지만, 여건상 아무나 마실 수 없는 한정 판매 커피가 봉천동 나눔 커피입니다.

 

배송비 문제도 그렇고 배달도 여유 있을 때 오며 가며 전하는 것이라 저희 일정에 맞추고 있지요. 맛보신 이들은 가성비 최고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길 주저하지 않고 꾸준히 주문하는 걸 보면 자찬은 아닌 듯합니다.

 

가격 180g1만 원. 배송은 주문자가 배송 기간은 배달하는 신부나 사무국장 마음. 단 볶은 후 3일 안에는 배송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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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늦었지만 지난 222일 봉천동나눔의집 공동체의 한 가족인 드림한누리공부방 친구들과 이웃한 두리하나공부방 친구들의 합동 공연 동영상을 올립니다.


바쁜 부모님들 때문에 집보다 공부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은 공부방 친구들이 지난 한 해 함께 놀고 공부하며 준비한 공연입니다.

 

2015년 지난 한 해 동안 무엇을 했는지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였지요.

 

잘할 수 있을까? 누가 부담을 준 것도 아닌데 실수하면 안 된다는 스스로의 책임감으로 부담감도 많았지만 공연을 마치고 아이들 스스로 대견해하고 뿌듯해했다고 하네요. 내년에는 더 알찬 공연을 하자는 다짐도 함께 말입니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다음날 지쳐 쓰러졌다고 합니다. ㅎㅎㅎ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의 모습 함께 보시고 잘 자라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서도 격려하고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동영상 제작은 봉사자 정지영 선생님이 수고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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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노래 교실은 다시 안 하셔?”

 

안 하긴요. 다시 하죠. 지금은 겨울방학이고 조만간 다시 해야죠.”

 

봉천동 나눔의집에서 요즘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단연 노래교실입니다.

 

교회 공간을 이용해서 혹은 근처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있는 주민문화공간을 빌려 상반기 하반기로 나눠 각각 짧게는 5회 길게는 10회 정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노래와 기타 연주는 저희 나눔의집 원장인 김남석 토마 신부님이 진행하고 좀 더 체계적인 진행을 위해 얼마 전 신부님이 트로트 가요 강사 자격증을 땄습니다.

 

트로트 가요 강사 자격증은 민간 자격증이기는 하지만 박남정 씨가 부른 사랑의 불시착, 주현미의 짝사랑, 잠깐만 등을 비롯해 찬찬찬, 차차차, 찰랑찰랑 등 많은 히트곡의 작사한 이호섭 작곡가가 주는 권위(?) 있는 자격증입니다. 사실 나눔의집 사무국에서도 이호섭 씨가 어떤 분인지 잘 몰랐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더 잘 아시더군요.

 

신부님이 이호섭 씨에게 트로트 가요 강사 자격증을 받는다는 소식에 어찌나 큰 환호를 하시는지 나눔의집에 있으면서 그런 큰 박수와 환호는 처음 들었습니다.

 

사진을 꼭 찍어오라는 어르신들의 명령에 지난 수료식에서 기념사진을 한 장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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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에 성체성사를 세우시어 구원의 신비를 드러내셨나이다.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우리가 모든 죄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새 계명을 마음속에 새기며 살아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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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동생

 

황민순

 


어린 시절

내 동생 공부 시키려고

나는 글을 못 배웠네

 

젊어서는 눈치로 살았네

자식 낳고 살면서

글을 못 배운 것이 후회되어

60 중반 돼서야

글을 배우게 되었네

 

동생한테 글 배우러 다닌다 하니

내 동생이

언니 미안해하고

말하네요

나는 괜찮아했네

왜냐하면 지금 나는 행복하니까.


 

-2013년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 장려상.

 

 

 

지난 315일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한글 교실(민들레 한글 교실)이 문을 열었습니다. 첫날 한글 지도 교사(문해 교사) 분의 시 낭송에 저건 내 이야기인데라며 몇몇 할머니들은 눈시울을 붉히셨지요.

 

저희 나눔의집 주변에는 가난과 여성차별로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한 어르신들이 많습니다. 한글을 읽고 쓰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곤란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지요. 조손 가정이 많은 지역 특성상 손주들의 학습능력 저하로 이어지고 자존감도 낮아져 이웃 주민과 불화의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특히 각종 복지 서비스에서 소외되어 받아야 할 혜택도 많이 놓치고 있습니다.

 

주변에 한글 교실을 여는 복지 기관도 많지만,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사각지대의 어르신들도 많습니다. 가족이 있으나 홀로 사시는 어르신의 경우 도움이 필요하지만 서류상 대상이 아닌 경우가 허다하기에 조건 없이 누구나 와서 배울 수 있는 곳이 필요하기에 저희가 한글 교실을 운영하게 된 이유이지요.

 

또 다른 이유는 주민분과의 긴밀한 만남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움직이지 않고 한자리에 머물러선 내밀한 속사정을 알 수 없기에 한글교실 외에도 노래와 명상 교실을 통해 자주 만나고 대화 하면서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찾고 있습니다.

 

작년에 배우셨던 분들이 주축이 되어 올해도 열네 분 정도가 오셨습니다. 어색했던 첫 만남도 일주일이 지나선 익숙해 졌습니다. 할머니들 말씀도 많아지시고 이제는 쑥스러워하지 않으시고 모르시는 것은 스스럼없이 물어주셔서 오히려 감사하네요.


그리고 장소와 현수막, 간식을 제공해 주신 관악드림타운 2단지 관리사무소에도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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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천동나눔의집에는 아주 특별한 십자가가 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비전향 장기수 출신 금재성 할아버지가 1992년 직접 깎아 만든 십자가지요.


1992년 원인 모를 화재로 교회도 십자가도 모두 불에 타고 다시 교회를 세울 때 할아버지께서는 "젊었을 때 조각을 좀 했었습니다. 허락해 주시면 한번 해 보겠습니다."라며 십자가를 자신이 직접 만들어 보시겠다는 제안을 하셨고 기독교도가 아니지만 나눔의 집과 서로 마음을 나누었다는 증거였기에 "큰 영광"이라며 공동체 모든 이들이 흔쾌히 받아드렸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1천 원짜리 조각도를 문방구에서 사고 공사장에서 나무 조각을 구해다 40년 동안 녹슨 실력을 가다듬으며 나눔의 집이 해왔던 일들과 교회와 성당 수십 군데를 다니며 사전 준비를 하셨다고 하네요.


금 할아버지는 "조선의 예수, 일하는 사람들의 예수를 십자가에 새기고 싶다"는 말씀과 함께 완성하기까지 한 달 가까이를 두문불출하며 조각에 전념하셨고 사진 속 십자가를 완성하셨다고 합니다.





연꽃 문양이 들어간 받침대, 상투를 튼 예수님, 갈비뼈가 드러난 마른 몸이지만 팔은 근육이 울뚱불뚱한  '노동자 예수'을 표현하셨지요.


처음 십자가를 교회 벽면에 걸고 모두 감격적인 성찬례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때 만큼의 감격은 아닐지 모르지만 십자가를 보고 있으면 그날의 감동이 밀려오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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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예수님십자가를 보면 가슴 뭉클하네요~

    2016.03.28 04:22 [ ADDR : EDIT/ DEL : REPL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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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34명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거의 1억 원을 반환하라는 판결이 떨어졌어요. 이것 말고도 개인적으로도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좋은 분들을 계속 만날 수 있어 계속 헤쳐갈 힘이 됩니다. 열심히 해보려고 합니다. 앞으로 계속될 싸움에 항상 함께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이렇게 많은 분이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KTX열차승무지부 김승하 지부장)

 

고난주일 연합 감사성찬례가 고난주일인 3월 20일 용산역 앞에서 3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드려졌다. 성공회 나눔의집협의회는 매년 고난주일에 고난의 현장에서 감사성찬례를 드린다.

 

고난의 현장에서 외로이 싸우는 이들과 함께하고 이들의 억울한 탄원이 많은 이들에게 전해지길 위해서다.

 

KTX 여승무원들은 지난 2004년 정규직을 약속받고 철도청에 입사했지만, 1년 후 약속이 번복됐고, 2006년 3월부터 파업에 돌입해 싸움을 이어오고 있다.

 

다수는 이들의 싸움이 끝난 것으로 알고 있다. 실제로 2010년 1심과 2011년 2심은 '실질적 사용자인 철도공사가 철도유통을 통해 승무원을 부당해고, 열차팀장과 승무원업무를 횡적으로 구분했다'며 KTX 여승무원들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2015년 대법은 이 판결을 180도로 뒤집었다.

 

"안전업무는 이례적 상황에 응당 필요한 조치에 불과하다"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었다. 이 판결은 2015년 12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2015년 최악의 판결'로 선정했다.

 

"이렇게 길어질는지는 몰랐지요. 사회에 나와 얻는 첫 직장이 이렇게 되리라곤 정부가 거짓말을 하리라곤 몰랐습니다."

 

12년 전... 

계약직이란 말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20대 초반의 여성들은 이제 한 가정을 함께 책임지는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처음 보았던 이들의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만큼의 세월이 흘렀다.

 

12년 전...

철도공사로부터 '지상의 스튜어디스'로 준공무원 대우를 해준다는 약속을 들었지만 지금 이들에겐 1억 원에 가까운 채무만이 남겨졌다.

 

그리고 작년 이 소식에 절망한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여승무원의 마지막을 알리는 소식도 듣게됐다.

 

고난주일 함께 했던 그리고 함께하지 못했지만 마음으로 함께한 공동체 모든 식구가 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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