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얼굴이 누가 봐도 제일 잘 그려진 것 같아요~ 샘이 그린 그림은 어디 있어요?”

“... 묻지 마세요...”


상대의 얼굴에 OHP 필름을 얼굴에 대고 얼굴 윤곽을 따라 그리는 것이 쉬운 듯 또 생각만큼 잘 그려지진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도구의 힘을 빌려서 인진 몰라도 모두 “나 못 그리겠다.”는 소린 한마디 없이 모두 그림 그리는 것이 즐거워 보입니다.


지난 1월 12일 봉천동나눔의집(이하 나눔의집)과 관악건강돌봄네트워크 그리고 연세대의료청년동아리(이하 의청)가 함께 ‘그림책 읽는 이웃’을 주제로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나눔의집 주변 어르신들과 의청 학생들이 그림책을 매개로 어르신 자신의 삶을 그림으로 풀어내 보자는 취지입니다.

지난 일 년 동안 의청은 담당 학생들이 한 달에 두 번 결연 가정 어르신 댁을 방문해 말동무가 되고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혹 잘못 드시는 약이 없는지 실내 거동 중에 위험한 것들이 없는지 보고 개선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어르신들과 친해지고 또 많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지만 친해진 만큼 사실 또 일 년이 지나니 딱히 나눌 이야기도 마땅치 않아진 것이 사실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어르신의 삶을 공유하지 못하는 20대 청년으로서 그저 현재의 신변잡기 외엔 어르신과 대화할 내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르신의 불편함을 찾아 덜어드리고 건강을 점검하는 것도 의미 있고 필요한 일이지만 좀 더 깊이 접근하고 뭔가 의미 있는 진전을 기대했던 건 나눔의집만 아니라 의청의 욕구이기도 합니다.


마침 나눔의집과 의청의 매개인 일신연세의원 조계성 원장님이 자신이 들었던 프로젝트가 나눔의집 어르신들과 함께하기 딱 좋은 사업인 듯하다며 ‘그림책 읽는 이웃’ 프로젝트를 소개해 주셨고 지난 12일 프로젝트 진행 담당자인 한명희 대표를 모시고 맛빼기 강연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이 작업은 사실 충남 부여 송정마을에서 이미 성과를 보인 프로젝트입니다. 그림책 문화예술 단체인 ‘그림책미술관시민모임’이 2015년부터 송정마을 주민들과 함께 ‘그림책 읽는 마을 찻집’ 조성 사업하고 어르신들과 함께 그림책을 읽고, 그림을 그렸고 이 둘을 엮어 23권의 그림책을 만들었습니다.

한명희 대표(위 사진)는 “20대 젊은 학생들과 프로젝트를 함께 공유하는 것은 저로서도 처음 있는 일이라 잔뜩 고민을 짊어지고 가지만 분명히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아요”라며 “그림책에 담긴 이야기는 평범하고 소박하지만, 정직하고 또, 긍정적인 삶의 자세가 담겨 있고 저는 그림책이 노인과 아이들을 이어주고 마을이 가진 기억을 통해 도시와 소통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며 봉천동나눔의집 어르신들과 학생들이 함께 해나갈 작업도 굉장히 기대된다고 말합니다.


사실 저희도 고민이 많습니다. 책 하나 만들기가 사실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저희 어르신 다수가 한글을 깨우치지 못한 데다 색연필 한번 잡아 본 적 없는 분도 많아서 그림책이야 함께 학생들과 읽는다 치더라도 이후 어르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또 그림으로까지 엮어가기가 쉬운 일만은 아닐 것이라 예상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ㅠㅠ 읽어드릴 책부터 작업이 끝난 후 책을 만드는 것까지 재정을 마련하는 것도 사무국으로선 큰 걱정입니다. 쉽지 않지만 좋은 사업일 것 같기에... 고민은 깊어갑니다.


하지만 ^^ 뭐 열정의 바퀴가 굴러가면 나머지 일은 눈덩이 불어나듯 되어가지 않을까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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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나눔의집에 웃지 못할 해프닝이 일어났습니다.


1년 전 돌아가신 것으로 알고 있었던 이** 할아버지의 핸드폰 번호로 한밤중에 전화가 걸려왔기 때문이지요. 저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전화를 받아야 했지만, 순간 당황스러워 몇 번이나 신호음이 지나가기를 기다렸습니다.


보이스피싱인가? 결국 몇 번의 망설임 끝에 통화 버튼을 눌렀습니다. 벌써 1년 전에 돌아가신 것으로 알고 있었던 어르신의 목소리가 생생히 전화기를 통해 들려왔습니다. 


"박 선생~~ 나 이제 돌아왔어. 먹거리 다시 받으러 갈까 하는데 괜찮겠지?" 무슨 공포 영화도 아니고 돌아가신 분이 전화로 찾아오겠다고 하니 어찌 당황스럽고 무섭지 않을 수 있겠어요.


일단은 '그러겠다', '오시면 말씀 나누시자'라고 하곤 종료 버튼을 눌렀습니다. 다리 힘이 쭉 빠지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오신다는 분이 약속한 날짜에도 오지 않고 2주 동안 오신다는 전화만 계속하시는 거예요. 정말 2주간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고 사무실에선 모두 온갖 상상의 나래를 다 폈습니다. ㅠㅠ 


2017년 여름 매주 두 차례 나눔의집에 반찬을 받으러 오시던 할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오시지 않게 되었어요. 궁금함에 전화도 하고 집을 찾아가기도 했지만 만나 뵐 수도 없었어요. 걱정스러움에 어떻게 연락이 닿지 않을까 싶어 쪽지를 남겨 두었는데 며칠 뒤 할아버지의 조카라는 분이 나눔의집을 찾아오셔서 할아버지의 소식을 전해 주셨지요. 갑자기 몸이 많이 안 좋아지셔서 지방에 계신 할아버지 누님댁에 요양가게 됐다며 더는 반찬을 주시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어요.


소외 노인분들의 건강이야 하루가 다르다 보니 갑작스러운 건강 이상 소식도 사실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지만, 연세가 그리 많지도 않고 몸을 움직이지 못한 만큼 건강이 나빠 보이시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연락조차 안 될 만큼 건강이 악화 되셨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소식이었지요. 


어찌 되었건 조카분에게 할아버지에 대한 새로운 소식이 있으면 알려 달라 하곤 조카분의 연락처를 받아 두었습니다. 그리고 가끔 생각이 날 때마다. 조카분에게 할아버지는 어떠신지 물어보곤 했지요.


그러다 지난 2017년 가을 조카분에게 연락드렸더니 할아버지가 이미 돌아가셨으니 이제 연락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거예요. 돌아가셨을 때 말씀해 주시지 그러셨냐고 반문했지만, 경황이 없어 못 알려드렸다며 전화를 끊어 버리셨어요. 마지막을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 좀 더 자세히 물어 볼 걸 하는 마음에 한동안 기분이 우울했습니다.


그런데 18년 가을, 할아버지가 연락을 주신 거에요. 전화가 오고 2주가 지난 어느 날 나눔의집을 찾아오셨어요. 다행히 건강도 생각처럼 나빠 보이지 않으셨어요. 조카분이 어떤 마음으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말씀하셨는지 알 길이 없고 할아버지께서도 "오해가 있었다"고만 말씀하실 뿐 그 일에 대해서는 더는 말 하지 말라 하시니 차마 더 물어볼 수 없었지만, 다시 뵐 수 있게 된 것 만으로도 반갑고 기뻤습니다. 


이** 할아버지처럼 아예 돌아가셨다 말하는 친지분은 지금껏 없었지만 사실 나눔의집을 오시는 어르신들 중 상당수는 어느 날 갑자기 가족분들에 의해 어느 요양원으로 모셔지고 연락이 두절 되는 경우가 의외로 종종 있습니다. 가족들은 나눔의집이 연락하고 찾아가는걸 꺼리는 것 같습니다. 연락처도 요양병원 주소도 알려주지 않으시고 다만 잘 계신다고만 말씀하시죠. 그러다 몇몇 분들은 돌아가시면 연락이라도 주셔서 장례식장에서나 겨우 영정으로 마지막 인사를 나누곤 합니다. 저희가 어떤 불이익을 주려는 것도 아니고 단지 어르신의 말동무가 되어 드리려는 것뿐이었는데... 왜 연락처를 알려주시지 않을까 속상하면서도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새삼 어르신들뿐 아니라 가족들에 관한 세심한 관심과 배려도 나눔의집이 쏟아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무튼 혼자 지내시는 이** 할아버지는 몸도 마음도 힘드시지만 늘 웃으면서 특유의 말투로 "박 선생~~"하고 부르시며 나눔의집에 찾아오세요. 한동안 듣지 못했던 할아버지의 "박 선생~~" 소리를 듣게 되어 고맙고 반갑습니다. 할아버지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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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집 사무실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커다란 은행나무와 대추나무가 심겨 있는 빌라가 있습니다. 빌라 지하 단칸방엔 아흔의 할아버지와 여든의 할머니가 살고 계시지요.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는 종일 집에 계셔서 방에 찾아가지 않으면 얼굴 뵙기 힘들지만, 할아버지는 주변을 자주 산책하십니다. 


갑갑한 지하 방을 벗어나 주변을 산책하시는 것이 할아버지의 낙이지요. 특히 나눔의집에 오실 때면 언제나 구두부터 모자까지 갖춰 입고 오십니다. 할아버지는 백발이 멋진 신사지요. 하지만 요즘 할아버지의 외출이 많이 줄었습니다. 아흔 연세에 기력도 떨어지셨고 할머니 걱정에 잘 다니시질 못합니다. 


걱정스러운건 요즘 할아버지의 치매가 많이 심해지신 것 같아요. 잠깐 산책 나오실 때도 잘 차려입으셨던 분인데 요즘 더운 날에도 내복이나 방한복을 입고 나올 때도 있으시고. 속옷 차림으로 나오시는 등 예전 같지 않은 모습을 자주 보이셔서 걱정입니다.


얼마 전, 할아버지는 목이 쉴 때까지 목청을 돋우며 옆집을 향해 고함을 치셨습니다. 그간 옆집 어르신에게 서운하셨던 것을 이번에 다 표출하시는 듯했습니다. 문제는 욕을 들으시는 옆집 분들도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무슨 이유일까?' 화내는 이유를 모르니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결국 주민센터 복지담당 선생님이 오셔서 소리치는 것은 그만두셨지만 할아버지의 억울함은 사라지지 않은 듯합니다. 할아버지와의 소통은 점점 힘들어지고, 찾아오는 이들의 얼굴도 할아버지의 기억에서 점점 흐려지는 듯합니다.


당뇨로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대신한 가사 노동은 아흔의 할아버지에게 버거운 일입니다. 특히 할머니의 인슐린 주사는 가장 큰 어려움이지요. 누군가 대신 처리해주면 좋을 듯한데. 할머니는 할아버지 외엔 누구의 도움도 거절하십니다. 오른다리, 왼다리, 오른팔, 왼팔 순으로 혹 같은 부위에 계속 주사를 놓을까 달력에 날짜 별로 표시하지만 이젠 이 달력 표시마저도 기억하기 어려운 지경에 놓였습니다. 날짜, 요일, 볼일 보러 가야 할 일들을 할머니가 기억해 주지 않으면 많은 것을 잊고, 놓치게 됩니다. 


저희가 조금 더 자주 찾아뵙는 수 밖에 없네요.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서로 의지하며 건강히 지내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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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영어 표현인 History는 그의 이야기 즉 사람의 이야기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배우고 알아가는 역사는 우리 주변의 이야기가 아닌 왕조사 혹은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입니다.

 

우리 주변의 삶을 다룬 특별하지 않은 특별한 역사 기록전이 지난 201853일부터 516일까지 수원 예술공간 봄에서 <이서순, 같이> (그늘 속 당신을 위한 헌정 전시회)라는 이름으로 개최되었습니다.


전시 주제는 봉천동나눔의집과 결연가정 관계인 이서순 할머니의 오늘의 삶입니다. 이서순 할머니는 52세에 서울로 올라와 건물 청소 노동과 하역 일을 해오며 자녀들을 키우셨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스스로의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한 달 15만 원을 벌기 위한 폐지와 고철 줍는 일을 하시죠.



끝없이 이어진 생존 노동과 빈곤의 그늘 아래 사회의 관심 대상에서 배제되어 살아야 했던 할머니의 삶.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주변의 이야기이고 진정한 역사(Herstory)가 아닐까 합니다. 그 삶을 기록했습니다. 구술기록을 정리해 책으로 출판하는 방식이 아닌 그림으로 담았다는 점이 특색입니다.

 

전시 기획자이며 화가인 임동현 화백이 1년 간 할머니의 삶을 쫒으며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를 기록하고 이를 토대로 5명의 작가가 함께 할머니의 삶을 나누고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주목 없이 버려진 사람들도 같은 인간이기에 반드시 남기고 싶은 자신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할머니처럼 저도 배제된 목소리를 수집하고 기록하며 그들의 표현 과정에 기꺼이 나를 사용하고 싶었습니다.”

 

임 화백은 사람들이 쉽게 쓰고 버리는 폐박스를 할머니의 선택을 통해 재활용되는 또 스스로의 삶을 이어가는 과정에 주목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전시 작품 역시 할머니의 삶을 판화화 해서 할머니가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매일 거리에서 줍는 폐박스에 그림을 찍어 전시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함께 참여한 작가들도 회화, 조소, 설치 등 다양한 형태의 작품에도 쉽게 버려지는 물건들을 활용해 전시했습니다.



 

나눔의집은 주변 99%의 일상적인 삶들을 그려내는 이러한 일들에 앞으로도 함께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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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신한은행 관악지점에서 여섯 분이 주말 봉사를 왔습니다. 


"혹시 봄동은 무쳐 보셨어요? 닭죽을 끓이려고 하는데...음... 전도 좀 부쳐서 어르신들 가져다 드리려고요...", "제가... 사무실에서만 일하다 보니 집안일을 안 해봐서요... 그래도 해보죠. 뭐 ^^"


경험이 없다는 봉사자 선생님들보다 일을 시키는 저희가 더 긴장 탔습니다. 아~ 오늘 망한 것 아닐까 ㅠㅠ"




걱정은 기우일 뿐이었습니다. 어찌나 열심히 후딱후딱 하시는지 회사 생활은 역시 거저 하는 것이 아니었나 봅니다. 음식을 드신 할머니 할아버지께선 맛있었다며 엄지를 척하고 드셨어요. 파지 줍는 일도 처음 하는 것이라 어려웠을 텐데 할머니가 마음에 쏙 들었는지 "다음주도 오는겨!"라고 말씀하셔서 저희가 대답하기 참 곤란했었습니다. ^^ 봉사해 주신 신한은행 관악지점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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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츠하이머와 치매를 통해 인간의 퇴화 과정을 소개한 <주름>이란 만화책이 있습니다. 그중에 알츠하이머로 거의 모든 기억을 잃은 할아버지에게 그의 부인이 귓속말로 '사기꾼'이라고 말하고 아무것도 못 알아들을 것 같은 할아버지가 빙그레 웃는 장면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청년 시절 할아버지가 구름을 떠다 주면 사귀겠다는 할머니의 말에 종탑 위로 함께 올라가 구름을 맞이던 그 시절 "이 사기꾼"이라는 말과 함께 평생의 동반자가 된 그때를 회상하는 장면이지요.


봉천동 나눔의집과 함께하는 어르신 중에 이미 기억을 많이 잃어버리셨거나 이제 진행 단계로 들어선 치매 어르신들이 있습니다. 매번 찾아가도 항상 새로운 사람을 맞이하듯 그리고 시간으로 치면 대략 3시간 분량의 자신의 인생 드라마를 무한 반복해서 저희에게 들려주시기도 하지요. 


적게는 여든, 많게는 아흔을 넘긴 어르신들의 인생이 짧은 3시간에 요약될 순 없겠지만 아마 그 기억들이 가장 행복한 기억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어르신들의 행복했던 기억을 고작 3시간밖에 공유할 수 없는 저희로서도 안타깝고 아쉬움이 남습니다. 점점 흐려져가는 기억 중에서도 여전히 반짝거리는 추억이 저희와의 대화 속에서 끄집어져 올라옵니다. 마치 첫 펌프질로 끌어 올릴 수 없는 우물물을 끌어 올리기 위한 마중물처럼요. 반짝이는 추억들을 좀더 많이 나누어 가질 수 있도록 저희도 더 노력하겠습니다. 어르신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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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의청은 새벽을 연다~~"


연세대학교 의료 청년봉사단(이하 의청) 학생들의 건배사입니다. "본래의 뜻은 엄청 거창한데 글쎄요 다들 ^^;; 새벽까지 술 마시자는 건배 같이 느끼는 것 같아요." 


지난 2월부터 연세대학교 봉사동아리 의청이 한달에 두 번 나눔의집에서 의료 봉사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간호학과 학생들과 의과대 학생들로 구성된 봉사동아리지요. 무조건 들어야 하는 선택권이 없는 빡빡한 교과 과정과 주에 며칠은 날밤을 새야 하는 많은 과제 중에도 어르신들의 건강을 체크하고 말동무가 되기 위해 시간을 거르지 않고 찾아오는 학생들이 대견하기만 합니다.  


"오늘 할머니하고 여의도로 놀러 갔었어요. 날씨도 좋고 굉장히 좋아하시더라고요." 며칠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어르신들과 많이 친해진 듯 합니다. 학생들이 나눔의집에서 즐거운 추억과 학교나 병원에서 얻을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얻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새벽을 열어가는 의청~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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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나눔의집 언덕길 저 위에서 끌차를 한가득 끌고 내려오시는 안 할머니가 저를 보면서 “이제와?” 라고 반겨주십니다. 오늘도 할머니는 아침부터 파지를 한가득 싣고서 팔러 가십니다.


나눔의집이 있는 언덕길 위쪽에 사시는 안 할머니는 우리 동네 우렁각시입니다.

동네에서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잘 알고 계시는 할머니는 하루에도 몇 번씩 집을 찾아가시면서 이런저런 일들을 챙겨주시죠. 나눔의집 먹거리도 할머니 것을 가지고 가시는 길에 가져다주시는 등 나눔의집 일도 여러 가지 많이 도와주십니다.


동네 어르신으로 할머니를 뵌 지는 아주 오래 되었지만 나눔의 집과 인연을 맺게 된 건 작년 가을부터였습니다. 작년 가을 쯤 할머니가 나눔의집으로 찾아오셔서 "내가 이제는 너무 힘들어서 그러는데 여기서 좀 도와주면 안 될까?" 라고 미안해하시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른 어르신들이 "저이는 사정이 괜찮아, 먹고살만해, 젊어서 일도 하고... 나눔의집에 안와도 되는데.."라고들 많이 말씀하셔서 그래도 여기 어르신들보다는 괜찮으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봅니다. 할머니 이야기를 듣고 진즉에 이야기를 해 주셨으면.... 좀 더 잘 살펴볼걸하는  후회가 들기도 했습니다. 


할머니는 오랫동안 혼자 사신 것 같습니다. 가족이야기도 거의 하지 않으시고, 할머니 본인 이야기도 잘 하시질 않으십니다. 할머니 이야기를 더 들으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리지 않을까합니다.


보살펴 주는 가족이 따로 없어 할머니는 파지수거로 생활비를 마련하셨는데 요즘은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아 일을 하는 것이 녹록치 않다고 하십니다. 더군다나 동네에 파지 줍는 구역이 정해져 있어 안 할머니는 조금 멀리 다니셔야 하는 불편한 점이 있어 참 안타깝습니다.


힘은 들지만 하루에 몇 번씩 마주치는 할머니의 인자한 미소 덕에 저 또한 함께 웃게 됩니다.


할머니 건강히 오래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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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천동나눔의집 소식2017. 12. 31. 18:53


계절이 가을의 문턱을 힘겹게 넘던 유독 찬바람이 많던 날, 할머니 한 분이 지팡이를 의지한 채 나눔의집을 찾아오셨습니다. "여가 어려운 사람 도와주는 곳이라 해서 찾아왔는데... 이런 말하기 참 염치가 없지만서도..." 그렇게 한참 만에야 자신의 이야기를 하셨죠.


'앵두나무집 할머니' 나눔의집에서 집 한 칸만 더 건너뛰면 손이 닿는 앵두나무가 우뚝하니 서 있는 집.  할머니는 그 집에 오랫동안 세 들어 사셨어요. 자신의 이름보다 별명이 더 친근한 이곳에서 '앵두나무집 할머니'는 또 다른 자신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함께 사시는데, 할아버진 몸이 불편하셔서 거의 누워 생활하세요. 조금만 움직여도 지치는 75세 노구지만 할머니는 아픈 한쪽 다리를 끌고 매일 생계를 위한 요양보호 일을 하십니다. 아픈 할아버지에게 들어가는 것이 한 둘이 아닌지라 이런저런 생활용품을 사들이려면 어쩔 수 없다고 합니다. 정작 요양 보호가 필요한 이는 할아버지이지만 할머니가 나가시면 할아버지는 한 자세로 텔레비전만 하염없이 보셔야 한다고... 휴~ 속상하고 한숨만 절로 쉬어졌습니다.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시간도 늦고, 반찬 준비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염치없지만 나눔의 집에서 조금만 도움 줄 수 없을까?" 몇 번이나 도움을 요청하려 했지만 본인보다 더 어려운 사람도 많은 것 같아서 발길을 돌리셨다고 합니다. "할머니 자주는 어렵고 일주일에 두 번 먹거리를 지원은 해드릴 수 있어요. 그것이라도 괜찮으시겠어요?" 안도하는 할머니 얼굴에 오히려 제가 더 미안해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반찬 두 번 나눠드리는 게 뭐라고... 

그런데 며칠 전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몇 번 뵙지도 못했는데... 돌아가셨다니 믿기지 않았죠.  한편으론 할머니가 마음은 힘드셔도 몸은 그래도 편해지시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마음이 불편한 소식이었습니다. 할아버지 장례가 끝나고 할머니께서 나눔의 집으로 찾아오셔서 고맙다는 말을 전해 주셨습니다. 


"할머니 이젠 힘드시게 일 안 하셔도 되지 않으세요?" 

“거기(요양보호 일하는 곳) 양반도 나보다 몇 살 많은데 다른 것보다 내가 가서 말벗해 주는 게 좋다고 해서.. 내가 힘 되는 데까지는 가야 할 것 같아." 라고 수줍게 웃으시면서 이야기하셨습니다. 할머니, 건강히 오래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 박유리 간사(가정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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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천동나눔의집 소식2017. 10. 11. 15:01

꾸륵꾸륵~ 비둘기 소리에 밖을 내다보니 사무실 맞은편 주차장에서 양*철 어르신이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고 계십니다. 커피를 한 잔 가지고 할아버지 옆으로 가서 앉아 비둘기 모이 주는 걸 뻔히 보면서도 툭하니 “뭐하세요~” 라며 이야기를 건네봅니다.


매일 집 문 앞에서 동네에서 수거한 폐가전 제품이나 철재 구조물들을 망치로 두드리고 필요한 부품들을 얻는 것이 하루의 일과시다 보니 성함의 가운데 자만 빼면 공교롭게도 양철이 되는지라 나눔의집에선 쉽게 양철 할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인사 외에는 먼저 말을 걸어오시는 적이 없어 무뚝뚝해 보이지만 정도 감성도 봉천동에선 제일 인 듯해요. 고철과 파지 줍는 일과 중에도 버려진 고양이나 강아지, 집 앞 주차장에 내려앉은 비둘기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지요. 집안에 뭐라도 먹을 것이 없나 살피고, 빈 공터가 있으면 어디든 꽃씨나 나무를 심으십니다. “할아버지 뭐 심으셨어요?", "어... 목화씨를 몇 개 심었는데 싹이 거의 안 나오네 목화가 있는 예쁜 화단을 만들고 싶었는데...”  나눔의집 화단에 핀 꽃들을 보살피는데도 가장 많은 품을 들이시는 할아버지. 꽃이 피고 나무에 열매가 맺히면 절로 얼굴에 웃음꽃이 핍니다. 입에 피어 문 담배 한 개피. 세상 모든 행복을 다 가진 듯한 표정이 정말 멋져, 피우지도 않는 담배가 혹 내 주머니에 없나 뒤져 보곤 합니다.


할아버진 고철을 주우시면서 여러 가지 생활 용품도 함께 주우시는데, 물품 중 상당 수가 나눔의집 수리에 들어갑니다. 물 뿌리개며 수도꼭지 손잡이 등등 고장이 나면 마치 나눔의집을 위해 맞춰 놓으신듯  집안에서 딱 맞는 물건을 금세 찾아오셔서 망가진 곳을 고쳐주시죠. 나눔의집 뿐이겠어요. 동네 친한 어르신들에겐 수리센터 보다 할아버지가 편합니다. 동네 맥가이버가 따로 없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척하니 이렇게 나눔의집에 신경 써 주시니 감사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수 밖에 없지요. 하지만 어르신은 나도 도움을 받았으니 나누어 주는 게 당연한 거라며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하세요. 그래도 저희는 항상 고맙습니다. 


- 박유리 간사(가정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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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랑살랑 바람도 조용히 스치고 지나는 골목길이 갑자기 부산스러워집니다. 우렁찬 목소리에 동네 고양이와 개, 방범 카메라까지 일제히 한 곳을 바라보는 듯합니다. 내용은 누군가를 부르는 목소리일 때도 있고, 화를 듬뿍 담은 불만 가득한 소리일 때도, 매우 다양합니다. 나눔의 집의 존재감 '갑' 유○○어르신의 목소리입니다.

 

유 어르신은 아드님과 함께 나눔의 집 골목길 위, 연립에서 살고 계십니다. 이웃집 숟가락 개수까지 모르는 소식도 없고 목소리도 크다 보니 나름 동네 유명인이지요. 장난도 많고 분위기도 곳 잘 살리는 데다 체격도 크고 댓 거리에선 절대 지는 법이 없어 동네 골목 대장 같은 어른입니다. 뭐 남의 사생활에 대해 너무 깊이까지 파고들거나 장난이 좀 심해질 때는 싸움의 원인자이기도 해서 실무자들을 참 난감하게 만들 때도 잦습니다.

 

세상일, 나눔의집 주변 사람들, 점심 먹으러 가는 복지관 실무자 그리고 함께 반찬을 나누는 이들의 이야기 등 어찌 그리 주변에 관심이 많은지 웃음이 나오지만 정작 본인 이야기는 잘 안 하시는 편입니다.

 

그나마 십수 년 들어왔던 쪼개진 소식들을 이어서 대략적이지만 할머니 상황을 알 수 있습니다. 할머니에겐 아들이 둘 있는데, 큰아들은 어디서 무얼 하는지 연락 두절 된지 오래고 지금은 작은아들과 살고 있습니다. 장성했지만 누가 누구를 돌보는지 헛갈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청소 일일 망정 스스로 생계를 꾸리기엔 부족함이 없었는데 요즘은 한걸음 걸을 때마다 끙끙거려야 할 만큼 다리가 좋지 않아 한숨은 점점 깊어지고 방을 가득 채울 것 같이 걱정이 쌓여만 갑니다.

 

"혼자되고 청소일이다 장사다 안 해본 일 없이 억척스럽게 살았는데 나도 다 된 것 같아" 할머니의 푸념 속에서 과장된 지금의 큰 소리가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표현은 과격하지만 하나하나 살피고 보면 그 속에서 '정'을 발견합니다. 뭐 그 정이 간혹 지나쳐서 싸움이 되기도 하지만 그 속에 다른 이에 대한 '관심'과 스스로에 대한 '외로움'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아 물론 저는 그 관심에서 좀 멀어지고 싶지만요. ^^ 

 

- 박유리 간사(가정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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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은 먹거리 나눔을 하는 날입니다. 이서순(85)어르신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제일 먼저 출석 도장을 찍으시는 분이세요.


인근 복지관에서 점심을 드시고 누구보다 먼저 오셔서는 먹거리 나눔 때 사용할 비닐 봉투를 사용하기 좋게 뽑아 놓으시지요. 비닐 대신 통에 반찬을 넣어 보내기도 했지만 통을 자주 잊고 안 가져오시거나 잃어버리셔서 결국 일회용 위생 비닐에 반찬을 나눠 담고 있습니다. 34가정 보통 가정당 7~8개의 비닐봉지를 나눠 담기에 한번 반찬을 나눌 때 마다 200여장의 위생봉지를 준비해야 합니다. 한장 한장 뜯어 사용하기 편하게 쌓아놓아야 하니 비닐봉지를 준비하는 것도 보통 손이 많이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일을 매번 이서순 어르신이 해주시고 있지요. 죄송하면서도 한편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올해 85세인 할머니는 매일 파지 줍는 일로 생활비를 마련하세요. 자녀들이 자주 찾아오지만 자식들 스스로도 생계 챙기기가 급급한지라 할머니에게 용돈 한번 주기가 쉽지 않고 생활비도 넉넉지 않습니다. 할머니는 "새끼들도 힘들어, 자식이 부모 모신다는 건 옛말이잖아, 몸이 허락하면 스스로 챙겨야지"라며 고단한 몸을 이끌고 매일 매일 파지를 줍고 용돈 벌이가 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찾고 있습니다.


몸이 따르지 않아 파지 줍는 일이 생계를 위한 유일한 일이 되었지만 그렇게 한푼 두푼 모아 임대 보증금을 좀 더 넣어서 월세를 4분의 1로 줄일 만큼 부지런하시기도 하지요. 누구에게도 쓴소리 하지 않으시고 항상 웃고 긍정적 할머니... 그래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도 주변에서 이것저것 할머니를 챙겨주시려 하나 봅니다. 나눔의 집 동네 어르신들도 병이나 종이컵을 모으면 부러 할머니를 부르는 것도 다 그 이유인듯해요.


작년에 손자, 손녀와 함께한 제주 여행이 당신에게 너무 좋았던지 집에 올 때 마다 여행 사진을 보여주시며 자랑을 하세요. 아마 평생 첫 비행기 여행인듯합니다. 연세가 연세인만큼 할머니 역시 어디 한 군데 안 아픈 곳이 있을까요. 하지만 할머니는 그 작은 손으로 아픈 곳을 두드리며 이런 소소한 일들에 웃음 지으며 "좋아요 아직 잘 움직일 수 있는데 뭐. 허허" 하고 웃으십니다. 할머니~ 사랑합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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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천동나눔의집 소식2016. 12. 24. 13:34

요즘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복돌아~, 복돌아~ 아유 이 녀석이 어디 갔어.”하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결연가정을 맺고 있는 박○○할머니가 강아지를 찾는 소리입니다. 문을 열면 사무실 근처에 하얀 강아지(?)가 뛰어 내려오는 것이 보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복돌이를 찾는 할머니 덕분에 동네 사람들은 복돌이를 다 아는 것 같습니다. 녀석은 낯가림이 있습니다. 처음 보거나 친하지 않은 사람은 절대 쓰다듬지 못하게 하죠. 특히 성인 남자들 곁에 다가가지도 않습니다. 젊은 아가씨는 예외입니다. 물론 사람의 매력 취향과는 달리 녀석 기준이 따로 있는 듯합니다. 제 눈에 예쁜 아가씨에겐 꼬리도 치고 머리도 들이밀며 쓰다듬어 달라고 아양을 떱니다. 물론 주인인 박 할머니에겐 든든한 동무이고 때론 화풀이 대상이기도 합니다. 


박 할머니는 이름이 많습니다. 성을 따서 그냥 박 할머니라 불리기도 하고 때론 할머니의 본 이름이 불리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문방구 할머니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다 다른 분인 줄 알았습니다. 모두 다 한 분을 이르는 말인 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할머니를 뵌 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치는 할머니 덕에 굉장히 오래 뵌 것 같은 친근함이 듭니다. 좀 전에 아랫동네에서 본 것 같은데 금방 또 다른 곳에서 할머니를 마주하기 때문입니다. 허리와 다리 통증이 심해져서 몸도 많이 아프시지만, 작년 할아버지를 여의시고 생계를 위해 홀로 파지 줍는 일을 하십니다. 할머니는 정말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홍길동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부지런히 움직이십니다. 이렇게 또 봉천동 홍길동 할머니라는 별명을 하나 더 추가해 드릴까 합니다.


여든여섯 고령에도 불구하고 아프다는 말씀 한번 않고 먹거리 나눔 때도 “얻어먹고 도움받는 만큼은 못하고 내 할 수 있는 만큼은 도와야지”라며 제일 많이 도움을 주시던 복돌이 할머니가 요즘 부쩍 외로움을 많이 타십니다. 작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꿈에 자주 나타나신다며 보고 싶다는 말씀도 많이 하시고 예전보다 많이 기력이 쇠해지신 듯합니다. 동내에서 대적할 이가 없다는 한 성격의 소유자이셨다는데 요즘엔 큰 소리 한번 없으시고 별일 아닌 일에도 눈물을 많이 흘리세요. 그나마 복돌이가 있어 많이 위로가 된다는 할머니, 아프지 마세요. 그리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나눔의 집과 인연을 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 박유리 간사(가정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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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천동나눔의집 소식2016. 12. 24. 13:31

헉헉거리며 9월의 어느 더운 날 고갯길을 올랐다.

‘괜히 온다고 그랬나... 아... 일단 가보자.’

문을 열고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뭔가 모르게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일단 시작하자.' ‘어떻게 하면 돼요?’

‘거 앉아서 담아....’ 제일 대장으로 보이는 어르신이 한마디 거드신다. ‘아.. 예...’

어리버리하게 자리에 앉아서... 어르신들이 지시하는 대로... 반찬을 나누어 담는다. 


막상 시작하고 보니. 잡생각도 없어지고,,, 나름 열중하게 된다. 가져가신 분들 것 제하고, 가지러 오시는 분들 것도 제하고 서너 집은 배달을 가야 한단다. 고맙다고, 수고하시라고 연신 인사하시는 분들을 보며, 남을 돕는다는 것. 봉사한다는 기쁨이 이런 건가 하고 잠시 생각해 본다. 


나눔의 집에 반찬 나눔 봉사를 시작한 지. 3개월여가 지나고 있다.

처음엔 별생각 없이 그냥 "일주일에 한두 시간 정도 하는 거니까."하고 아무런 의미부여도 하지 않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주 뵙는 어르신들의 안부도 궁금하고. 투닥거리긴 해도 사정이 있어 가지 못하는 날이면 어르신들도 왜 안 오냐고 물어보시는 분들도 계신다고 하니...


봉사라는 것이 남을 돕는다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그분들을 통해 사람 간의 정을 느낄 수도 있어서 나 또한 얻고 배우는 것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시간을 내서 일부러 찾아가야 하는 수고가 있긴 하다. 하지만, 처음의 걱정과는 다르게 받는 정도 있고, 봉사의 기쁨이라는 상투적이지만, 나 자신만의 뿌듯함 또한 생긴 것 같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지만, 그간에 좋은 일도 있었기에, 좋은 일하는 거니까 나에게 좋은 일이 더 생기는 건가 하는 긍정의 효과도 경험한 것 같다.


일주일에 하루, 한두 시간이지만, 학창시절 의무적으로 했었던 봉사활동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인 것 같다. 사람에 대한 정을 느낄 수 있고, 주는 기쁨과 그 즐거움을 되돌려 받는다는 긍정적인 효과로 인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 임윤미(가정결연 자원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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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천동나눔의집 소식2016. 10. 26. 14:15


봉천동나눔의집에는 다양한 분들이 삶과 생활을 나눕니다. 나누는 생활 중에는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치유와 돌봄이 필요한 분들이 많지만, 실무자만으론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저희의 모자람을 더해주는 분들이 계십니다. 재정적으로 후원해 주시는 분들과 봉사자 여러분들이지요. 이런 봉사자 중엔 특히 8년이란 시간 동안 저희와 함께 인연을 이어오며 토요 먹거리 나눔과 목욕 봉사, 파지 줍는 어르신을 돕거나 어르신들의 말동무가 되어주는 이들이 있습니다. 중앙대 봉사동아리 공감입니다.

 

지난 910일 중앙대학교 봉사동아리 공감이 저희 봉천동나눔의집에서 오리엔테이션을 가졌습니다.

 

나눔의집이 어떤 곳인지 그리고 현재 공감이 하는 봉사의 영역은 어디에 속하는지 그리고 좀 더 다양한 활동을 원하는 이들에게 나눔의집이 하는 활동을 소개하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공감은 주로 결연가정 어르신을 돕는 일을 하지요. 매년 1학년과 2학년이 주축 되어 한 주에 적게는 20명 많게는 30명이 결연가정 어르신들을 위한 활동을 합니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오기에 동아리로서 결속을 다지는 좋은 시간이 되기도 하지만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지 못하는 단점도 있습니다.

 

이번 오리엔테이션은 공감에 속한 대학생들에게 나눔의집 활동과 봉사에 대한 생각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봉사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보고자 마련한 시간이었습니다.

 

나눔의집은 공감친구들이 하는 결연가정 활동 이외에도 공부방 아이들의 학습을 돕거나 함께 놀아주는 일 그룹홈 아이들의 학습 멘토나 반찬 나눔 행사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외에도 나눔의집에 속한 센터 중엔 자활센터나 청소년 자활센터 그리고 어린이집도 있지만, 이 기관들은 모두 장기간의 교육을 통해 활동이 봉사 활동이 필요한 영역이어서 공감에는 소개만 했습니다.봉천동나눔의집에는 다양한 분들이 삶과 생활을 나눕니다. 나누는 생활 중에는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치유와 돌봄이 필요한 분들이 많지만 실무자만으론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저희의 모자람을 더해주는 분들이 계십니다. 재정적으로 후원해 주시는 분들과 봉사자 여러분들이지요. 이런 봉사자들 중엔 특히 8년이란 시간 동안 저희와 함께 인연을 이어오며 토요 먹거리 나눔과 목욕 봉사, 파지 줍는 어르신을 돕거나 어르신들의 말동무가 되어주는 이들이 있습니다. 중앙대 봉사동아리 공감입니다.

 

지난 910일 중앙대학교 봉사동아리 공감이 저희 봉천동나눔의집에서 오리엔테이션을 가졌습니다.

 

나눔의집이 어떤 곳인지 그리고 현재 공감이 하는 봉사의 영역은 어디에 속하는지 그리고 좀 더 다양한 활동을 원하는 이들에게 나눔의집이 하는 활동을 소개하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공감은 주로 결연가정 어르신을 돕는 일을 하지요. 매년 1학년과 2학이 주축이 되어 1 주에 적게는 20명 많게는 30명이 결연가정 어르신들을 위한 활동을 합니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오기에 동아리로서 결속을 다지는 좋은 시간이 되기도 하지만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지 못하는 단점도 있습니다.


이번 오리엔테이션은 공감에 속한 대학생들에게 나눔의집 활동과 봉사에 대한 생각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봉사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보고자 마련한 시간이었습니다.

 

나눔의집은 공감친구들이 하는 결연가정 활동 이외에도 공부방 아이들의 학습을 돕거나 함께 놀아주는 일 그룹홈 아이들의 학습멘토나 반찬나눔 행사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외에도 나눔의집에 속한 센터 중엔 자활센터나 청소년 자활센터 그리고 어린이집도 있지만 이 기관들은 모두 장기간의 교육을 통해 활동이 봉사 활동이 필요한 영역이어서 공감에는 소개만 했습니다.

 

또 봉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듣기 위해 월드카페라는 대화 기법을 통해 모두가 각자의 생각을 내놓고 함께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학생들은 봉사에 대해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채워줌으로 모두가 행복해 지는 것’, ‘나와 다른 누군가와의 소통’, ‘내가 아닌 우리를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남을 위하여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고 힘을 바쳐 애쓴다는 봉사의 사전적 의미를 각각의 가슴엔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사실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봉사의 대한 의미를 좀 더 단단하고 다양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믿습니다.

 

간단하지만 나눔의집에서 준비한 다과와 음료를 받은 학생들은 봉사하러 와서 이런 대접을 받아 생소했다고 말하네요. 자주 이런 자리를 마련하지 못한 저희가 죄송하네요. 8년간 저희들과 나눔의집 주민들의 힘이 되어준 공감에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또 봉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듣기 위해 월드카페라는 대화 기법을 통해 모두가 각자의 생각을 내놓고 함께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학생들은 봉사에 대해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채워줌으로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 ‘나와 다른 누군가와의 소통’, ‘내가 아닌 우리를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남을 위하여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고 힘을 바쳐 애쓴다는 봉사의 사전적 의미를 각각의 가슴엔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사실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봉사에 대한 의미를 좀 더 단단하고 다양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믿습니다.

 

간단하지만 나눔의집에서 준비한 다과와 음료를 받은 학생들은 봉사하러 와서 이런 대접을 받아 생소했다고 말하네요. 자주 이런 자리를 마련하지 못한 저희가 죄송하네요. 8년간 저희와 나눔의집 주민들의 힘이 되어준 공감에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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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의 손들이 노랗게 물들어가고 은행나무는 길 가는 사람들에게 장난치듯 뚝뚝 머리 위로 열매를 떨어뜨립니다.

 

바닥에 떨어진 열매가 사람들의 발에 치여 일부는 으깨져 고약한 냄새를 풍기지만 제법 튼실한 알맹이들은 한 손에 검정 비닐봉지를 든 어르신들의 손에 들리어집니다.

 

며칠 전 일이었어요. 드림한누리지역아동센터(이하 공부방) 선생님들이 점심시간 사이에 봉천동나눔의집 사무실로 오는 길이었죠.

 

오랫 동안 함께 한 선생님들이라 웬만한 동네 어르신들은 다 알고 계시고 나눔의집 결연가정 어르신과는 손주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결연 가정 어르신 중엔 복돌이 할머니로 불리는 어르신이 계세요. 올 초부터 할머니 집에서 사는 흰색 똥강아지 이름을 따서 그렇게 불리고 있지요. 새끼 땐 늘 그렇지만 분주하고 말도 안 들어서 할머니의 구박과 야무진 손길에 도망가고 배를 납작 바닥에 깔고 눈치를 보기도 했지만, 요즘은 할머니의 더할 나위 없는 든든한 가족으로 할머니 옆을 맴돕니다.

 

그런데 공부방 선생님들이 내려오던 그 날 복돌이도 보이지 않고 할머니만 길 건너 나무 아래 쓰러져 계시지 않겠어요.

 

놀란 선생님들이 할머니~~~”하며 다급한 목소리로 뛰어갔습니다. 정신을 잃으신 줄 알았던 할머니는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뒤돌아보시며 ? 라고 반문하셨죠.

 

괜찮으세요?” 놀란 선생님들이 가슴을 쓸며 왜 누워 계시느냐고 물었더니 허리 굽혀 은행 열매 줍기가 힘들어서 앉아서 줍고 있었다지 뭡니까. 선생님들이 보기에 앉았다가 보다는 거의 누워계셔서 그런 오해를 했던 거지요. 특히 복돌이 녀석도 할머니가 앉아계신 나무 옆 수풀 속에 숨어 있어 보이지 않았기에 더 오해했습니다.

 

~” 천근 근심의 무게가 한 번에 날아가는 듯했습니다.

 

작년 할아버지가 돌아가고 부쩍 외로움이 커진 할머니가 재개발 철거다 뭐다 걱정만 많아지셔서 요즘 저희도 건강이 부적 염려됐는지 그러한 일이 있으니 며칠이 지난 지금이야 웃고 그날의 일을 복기하지만 아 정말 간 떨어질 상황이었습니다.

 

할머니~~ 저희 놀라게 하지 말고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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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5월 28일) 안양유원지로 중앙대 봉사 동아리 공감 친구들과 결연 가정 어르신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봉천동 나눔의집은 1년에 한 번 결연가정 어르신들과 야회 나들이를 갑니다. 주로 가을 나들이를 가지만 이번엔 일정을 당겨 봄나들이로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결연가정 담당자인 채진희 선생님이 7월 출산 예정이라, 5월 말로 업무를 인계하게 되어 당분간 어르신들을 만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결연가정 어르신들과 유원지에서 함께 사진도 찍고 식사도 나누며 8년간 함께 했던 시간을 추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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